제목 | 예수의 부활과 산 소망

본문 |벧전1:3,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 4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빌라도의 허락을 얻어 자기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마태복음 27:59-61에“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선포하시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어가자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은 뿔뿔이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최후의 무덤에까지 따라간 사람은 두 여인뿐이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사흘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무덤을 군인들로 하여금 사흘 동안 지키게 해달라고 빌라도에게 부탁했습니다.

마태복음 27:65을 봅시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수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저희가 파수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예수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피와 물까지 다 쏟으셨을 뿐 아니라 로마 병사들이 예수의 허리를 창으로 찔러 육체의 생명이 끝났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병사들은 또한 예수의 무덤을 지키면서 사흘을 보냈습니다. 마태복음 16:21에 보니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했습니다. 17:23에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20:18, 19에도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면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삼일에 살아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19에는 자기의 부활을 간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이 성전은 46년 동안이나 지은 성전입니다. 제자들도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때 두 여인이 본 광경은 엄청난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경험했던 것보다 더욱 두렵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마 28:2-4)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온 인류의 새로운 소망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부활의 주님은 바라볼 때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도 아름다움으로 부활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토요일에는 무덤에 계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마 28:1)이른 아침에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아침을 주의 날이라 정하고 안식일의 개념이 주일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4월, 이 날을 부활 주일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주후 325년 교회 회의에서 안식 후 만월이 지나 첫 주일이 되는 날을 부활 주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전 세계가 오늘을 부활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에게 “예수 믿으시오”라고 하면 하나님은 믿겠는데 예수는 못 믿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신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은 더욱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주의 부활을 허위라고 합니다. 날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무덤이 도적질 당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났을 것이라고까지  합니다. 어떻게 하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신학자들도 부활 사건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시에도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은 예수의 부활을 절대 부정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8:11-15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이 없었다면 인류는 영원한 희망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인간은 영원한 절망 속에 빠져 버렸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에게 속죄함과 구원과 영생을 주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고 십자가를 자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2에 보면 “나는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14에 “나는 예수의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 살며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것보다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살며 온갖 멸시와 고난도 참아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자랑도 부활이 없이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영영 죽어 버렸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흘만에 부활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인 성탄절도 귀하고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도 귀하지만 우리의 가장 귀한 축복과 자랑은 바로 부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중에 인간을 지으셔서 모든 만물을 정복하여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미혹자 마귀는 인간의 생명을 완전히 파멸로 이끌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기쁨을 삼켜 버리고 가정의 평화를 깨뜨려 버립니다. 사회의 정서를 파괴시켜 버립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가정은 죽음으로 인하여 기쁨과 평화가 파괴되고 맙니다. 이 땅 위에 죽음을 극복할 자가 없습니다. 명예나 권세나 모든 것이 다 죽음 앞에 굴복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인간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을 뛰어 넘었습니다. 죽음의 극복은 사단으로부터의 승리입니다. 인격의 완성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땅에 무덤을 이루지 아니한 자로서 에녹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엘리야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담에게서 실패하시고 제2의 아담을 선택했으니 바로 노아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당시에 하나님과 동행한 자 (창 6:9)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결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완전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순종할 줄 알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지만 그도 역시 불완전한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완전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죽음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서의 완전한 자를 원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여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인간이십니다. 죽음에서 승리한 최초의 완전한 인간이셨습니다. 예수께서 땅에 계실 때는 ‘홀연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부활 후의 예수님은 닫힌 문이었는데도 ‘홀연히’제자들이 모여 있는 방에 나타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앞에 말씀하시던 주님은 ‘홀연히’사라지셨습니다.

누가복음 24:28-35까지 봅시다.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하는것 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 가시니라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오늘날 교회에서도 부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소경아 눈을 떠라’하셨을 때 소경은 빛을 찾았습니다. 눈이 부활된 것입니다. ‘벙어리야 말을 하라’할 때에 언어가 부활되었습니다. ‘귀머거리야 들으라’고 했을 때에 청력이 부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음을 입은 자체가 육체적인 부활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체험되는 수많은 변화를 보고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지만 우리는 다시 산 나사로가 죽었듯이 육체는 어느덧 시들고 맙니다. 불완전한 육체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부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내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서 부활의 사건을 믿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함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선생님을 부인하고 디베랴 바다로 도망쳤습니다. 불안과 공포와 초조한 맘으로 밤새껏 그물을 던졌습니다.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새벽이 되어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져 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언덕에 서서 말씀하시는 이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말씀하시는 이는 주님이셨습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생선을 굽고 계셨습니다. 밤새껏 수고하여 시장한 베드로를 먹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내 양을 먹이라”베드로는 고민했습니다. 용기 없는 배신자 된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 양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면서 왜 근심하십니까?

주님을 사랑하다고 하고 배반하고 부정했던 베드로와 같은 그러한 날들이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증인은 이제 이런 고민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성령은 베드로로 하여금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을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부활의 증인 된 자들에게 성령께서는 베드로처럼 순교의 기쁨을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로서의 삶의 시작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베드로의 영은 부활되었습니다. 영적인 부활을 체험한 베드로는 산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만일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의 부활을 체험해야 합니다. 육체는 풀과 같습니다.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들 듯 인간의 육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잇습니다. 예수 안에서 거듭나고 영적으로 부활된 여러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 7)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베드로처럼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1-32)“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행 3:15).“너희가 나무가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5:30),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5:32)

영적으로 부활된 자는 현재적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적 부활은 날마다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대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갈라디아서 5:22 말씀처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행동 하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조화를 이룰 때 이 땅은 머지 않아 완전 복음화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머지 않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부활도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산 소망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기다리는 부활절의 아침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