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라를구하자

본문 | 단6:10-13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나이다-단 6:10-1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애국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구호는 적에게 더 유리하거나 공산당을 도리어 찬양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대학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학생들이 데모하는 것을 좀 놓아두면 어떨까?’하고 생각했었답니다. 요즈음 학생들이 외치는 구호가 공산당이 쓰는 구호라고 합니다. 그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구국의 기도를 드릴 때입니다. 전세계에 흩어질 월남 백성들의 불행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라 잃은 설움은 ‘Boat People’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나라 잃은 그들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애국하는 일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1. 애국은 자기 직무에 열중하는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자기의 직무에 열심하는 것입니다. 정치가는 정치를 열심히 하고, 사업가는 사업을 열심히 하고, 농부는 열심히 농사를 하고,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고, 주부는 집안 일을 돌보면서 자녀들을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애국한다고 하면서 자기 직무에 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라를 위한 것일 수 없습니다. 세력 다툼이나 자리다툼만 한다면 나라의 장래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기술이 좋지 않아서 일본에게 뒤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란 사회는 개인주의가 아주 발달된 사회입니다. 그들은 사업을 하든지 직장 생활을 하든지 시간만 되면 하던 일도 중지합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수많은 부품들이 쓰이지 않은 채 작업장에 널려 있습니다. 일이 끝나자마자 노동자들이 떠나버립니다. 즉시 청소차가 와서 싹 쓸어다가 쓰레기장에 버립니다.

이와 다르게 일본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나라를 위해서 합니다. 지금 일본이 신군국주의를 부르짖고 있는 것도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개인보다는 국가가 우선된 사회입니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민족성이 그렇습니다. 같은 자동차 회사라 할지라도 일본 사람들은 작업을 마치면 작은 너트라도 쓸 것은 가려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하나도 버리지 아니합니다. 일본이 세계 대전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것도 국민 개개인이 자기들의 직무에 열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반면, 우리 민족은 지나친 자기 중심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개개인은 뛰어난데 연합되면 힘이 없습니다. 나 자신부터 우리의 단점을 보완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자기 일에 충실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애국은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네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교육의 의무,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 근로의 의무입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국민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다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병역의 의무는 스스로 국가를 지킬 줄 아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국가 존립을 위하여 적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국가의 안정을 위하여 몸바쳐 이 의무를 준행해야 합니다. 납세의 의무는 국가 번영을 위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세금을 바치면 도적질해 먹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하게 한답니다.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탈세하는 사람들은 한 국가의 국민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근로의 의무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 수고하는 것입니다. 자기 삶에 열심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수고 없이 이득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라의 경제는 피폐되어 갑니다. 노력의 대가만큼 이익이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임과 동시에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늘 나라의 시민도 마찬가지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호세아 4:6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5 이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흠이 없는 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 8)

하나님의 시민으로서 병역의 의무도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3에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라고 했습니다.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딤후 2:4). 군사는 사사로운 생활에 얽매이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싸우고 마귀와 싸우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엡 6:11)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납세의 의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을 바쳤습니다. 야곱은 10의 1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창 28:22). 모세의 율법은 10분의 1을 드릴 것을 요구합니다. 대한민국에 내는 세금은 떼어먹고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을 떼어먹으면 모든 것 다 쓸어가 버립니다. 하나님 앞에 영적인 납세의 의무를 다해 영적인 축복을 받읍시다.

성경에서도 근로의 의무가 나타나 있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했습니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3. 애국은 단합입니다.

우리 민족이 단합에 약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인정만 하지 말고 저 자신부터 약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될 줄 믿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무섭습니다. 한 사람이 실패하면 주위에서 그 사람이 성공할 때까지 도와줍니다. 그래서 어디 가든지 경제권을 잡아 버립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서로 싸웁니다. 외국에 가서까지 서로서로 싸웁니다. 결국 망합니다. 이런 불행은 애국이 될 수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서 4천만입니다.

이제 교회가 힘을 보여줄 때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단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싸웁니다. 이권만 밝히게 되고 손해 볼 일 있으면 하지 않습니다. 우리 온 교회가 단합했다면 우리 사회는 벌써 복지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다니엘서를 통해서 성도의 구국 운동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은 소년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는 구국을 위해 기도를 끊임없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벨론에서부터 우리 민족을 구원해 내실까?’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메시야의 오실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메시야의 탄생, 메시야의 고난, 메시야의 재림까지를 다니엘서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첫째, 다니엘은 성별된 생활을 했습니다. 포로 된 자가 왕궁에서 왕이 먹는 진미를 먹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런 일입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1:8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다니엘과 친구들은 왕의 진미를 싫다하고 채식을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별된 삶을 위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 오히려 얼굴빛이 더 좋아졌습니다. 성도의 생활은 성별된 생활입니다. 자신을 구별하여 세속에 물들지 아니할 때 하나님은 그로 더불어 영광받으시며 더 크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둘째, 자기보다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몰라 번뇌하고 있을 때 다니엘은 며칠의 여유를 달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의 어느 누구도 풀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 2:27, 28에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물으신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가 됩시다.

셋째, 다니엘은 동족을 사랑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높여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때 다니엘은 자기 혼자만 명예를 얻지 않고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천거했습니다. 다니엘 2:49에 “왕이 또 다니엘의 청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도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위대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서로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은 더 크게 영광받으십니다.

넷째, 다니엘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벌써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았습니다. 다니엘 9:1, 2을 보십시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여기서의 서책은 예레미야 25장입니다. 예레미야 25:11, 12을 보십시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갈대아가 바벨론입니다. 다니엘은 이 날이 속히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9:3, 4을 봅시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 앞에 절한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다니엘처럼 이러한 기도가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세계 전역에는 유행병처럼 공산주의 세력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남북한이란 극한적 사상의 대립 속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날의 시기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깰 때입니다.

 다니엘은 이국의 포로로 있으면서도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자기 동족과 같이 눈물을 흘리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굶주린 사자 굴에서도 그는 살아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를 향하여 나타납니다. 우리는 전방의 장병만 의지하지 말고 그들과 같이 깨어 있으면서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다니엘처럼 구국을 위한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역사 속에서 번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