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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5,26
지금 세상의 모든 것들은 부흥되기를
원합니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지식에 이르기까지 앞서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인격이 갖추어지기 전에 기업인이
되고 지식인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더 자기 중심적인
이기주의에 빠져 들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바로
진정한 부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1. 부흥은 왜 필요합니까?
부흥이라는 것은 ‘번성하다’ ‘늘어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양적인 증가를 부흥이라고 단정짓게 됩니다.
그러나 양적 증가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부흥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부흥은 왜 필요합니까?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 번성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행위가 악했기
때문입니다(창 6:1). 처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입니다(1:2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셨습니다(6:6).
진정한 부흥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근심하신 인간의
행위를 버리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 후 하나님께서 아담의 후손들에게
요구하신 부흥은 죄에서부터 해방되어 잃어 버린 낙원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가인의 살인 행위를 물려받은
인간의 전투적인 본능에서 사랑과 화해로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노아 이전에 사람들은 생활이 풍부했습니다.
그러나 그 풍요로운 사회가 결코 부흥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부흥되어야
합니다. 사회 환경이, 경제 구조나 지식 수준이 발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하여 잃어 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흥의 역사입니다.
2. 부흥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부흥은 치료를 받아서 되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받아서 되는 것도 , 수양을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부흥은 변화입니다. 재창조입니다. 구속, 곧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결국 부흥은 천국을 말합니다.
새 생병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부유해지고 그 가정은
행복된 것 같지만 실상은 타락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정
경제의 부흥과 더불어 그에 못지 않은 부정과 타락의 현상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물질적으로 실패했을 때 가난하고 궁핍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되어 있다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창세기 4장에 다른 이들은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고 수금과 퉁소를 만들어 음악을 즐기고,
가축을 길러 많은 재산을 늘려갔지만 에노스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창4:26)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 자체가 부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한 자는 변화됩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3. 부흥의 역사 후에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후 최대의
부흥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것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입니다.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랜 세월 동안 기다리셨습니다.(벧전 3:20). 그러나 하나님께
가까워져 옵니다. 노아만 방주를 지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부흥의 역사를 깨닫는 자에게 내릴 은혜였습니다.
니느웨에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12
만 명의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성의 죄악이 극심하여 멸망되어야
하는데 죄 없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요나를
보냈습니다. 이것은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입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깨달음으로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 개인에게 있어서는 풍랑이 부흥의 역사였습니다. 물고기
배 속에서 그의 깨달음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빚더미, 질병, 고난 중에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서와 같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모습을 깨닫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 방법에는 채찍과
징계가 있습니다. (히 12 : 5,6). 지금도 우리 앞에 있는
풍랑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부흥을 일으키기 위한 역사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채찍과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부흥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람에게 있어서의 부흥은 이삭의
출생입니다. 75세에 고향을 떠나 100세가 되도록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깝게 지냈습니다. 마침내 몸종
하갈로 하여금 이스마엘을 낳게 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가정에게 불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 버리거나 포기해 버릴 때 인간적인
관계나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은 일들은 실패의 원인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정한 부흥을
위하여 이스마엘과 하갈을 쫒아내라고 하십니다. 내 속에
있는 인간적인 요소와 육적인 것을 몰아 내지 못한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부흥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정욕이나 혈통이나 관습에 얽매여 있는 모든 줄을 끊어
버리는 능력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서에서 가장 큰 부흥을 이룩한 사람
중에 야곱이 있습니다.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과 축복이 구체적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는 야곱이라는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파란 만장한 일생은 오히려 고통이었습니다.
자기의 수많은 약점 속에서 그는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뢰했습니다.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의 부흥은 결국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부흥입니다.
부흥은 변화입니다. 그 본질적인 재창조의
역사가 부흥입니다. 마태복음 13장 말씀처럼 씨앗을 아무리
뿌려도 심어지지 않은 길바닥을 갈아 엎는 것, 길바닥을
뒤집어 파헤치는 것, 이것이 심령적 부흥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길바닥 같은
묵은 땅을 갈아엎어 버리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 어느 한
쪽이 병들어 썩어가고 있는 모습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내 속의 부흥은 영육간에 병들어 가는 상태를 치료 받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흥은 갈망하는 자,
갈급해 하는 자에게 그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하나하나가 다 부흥되기를 원하십니다. 본질적으로
죄에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부흥의
역사는 자녀 된 모든 사람의 삶 속에 변화를 주십니다.
수많은 세대가 교체되면서 영원히 남는
것은 오직 사람의 영혼밖에 없습니다. 물질도, 지식도,
명예도, 권력도 사라지고 맙니다. 마지막 그 영혼이 거처하게
되는 곳에서 인간의 삶의 가치가 결정되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에 동참하지 못한다면 영원토록 저주 아래 놓이게
됩니다. 이 시간에도 여러분 자신이 부흥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지배할 때 사람은 진실로 부흥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 속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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