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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1-9
마태복음 18:24 이하 말씀을 보면 어떤
사람이 1만 달란트 빚진 것이 있었으나 갚을 길이 없어서
주인에게 사정사정하여 그 빚을 탕감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갚지 않는다고
때리고 빚 갚을 것을 종용하며 옥에 가두었습니다. 마침
이 일을 지켜보던 사람이 1만 달란트를 탕감해 준 주인에게
일렀습니다. 그러자 그 주인은, “네가 빌기에 불쌍히 여겨서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었거늘 너는 네 돈을 빌려간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옥에 가두었다니 웬말이냐”고
노하여 탕감해 준 그 빚을 다시 갚도록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하나님이시오, 우리 예수님도 자비로운
예수님이십니다. 천국은 죄인이 들어갈 수 없고 의인만이
들어갈 수 있는데, 예수님의 자비하심으로 죄인인 우리가
탕감받고 속죄함 얻어서 의인으로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종이 주인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함 받아서 구원받음으로 천국에 의인으로서 당당히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베데스다는 자비를 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수양관이 나의 베데스다가 될 수
있겠습니까?
1. 베데스다 못가에 물이 동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베데스다 못가에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 물은
영적으로 해석하면 말씀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도
동해야 되겠지만 먼저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동해야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이 동 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교회를 병든 자나 괴로운 자나 가난한 자, 방황하는
자들이 가는 곳으로만 알고 지나쳐 버립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아 구원받아야 될
줄 밉습니다.
2. 성경 말씀을 내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읽을 때나
들을 때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열 두 아들을 축복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홍해를
건너게 하시므로 가나안이 축복을 받게 하셨구나 하며 성경을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로 보거나 듣지 말고 오늘날 나의
창조 역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5:16 말씀과 같이
나도 택함을 받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사야 31:3 이하에
보면 애굽을 세상에 비유했는데 출애굽의 과정도 나요,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광야 같은 연단을 통하여 가나안의
축복을 받은 것도 이스라엘의 한 역사로 보지 말고 오늘
‘나’로 믿어야 될 줄 믿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누가복음2:10에서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했는데 이것도 그 당시의 목자들이나 파사국의
박사들에게 필요한 기쁨의 소식이 아니라 안나 여선지나
시온이나 요한복음 4:25 이하의 사마리아 여인에게만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오늘의 ‘나’에게 기쁜 소식으로 그리스도가
탄생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쓰여진 모든 말씀을
나와 관계가 있고 내게 필요한 말씀이라고 받아들일 때,
은혜가 되고 하나님의 능력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문둥병을 낫게
하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죄인들을 용서해 준 것이
그 당시에만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히브리서 13:8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는
말씀을 믿어야 될 줄로 압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우리는 그때의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실을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이런 체험이 없기 때문에 2000년 전
언어가 소통되지 않았을 때에는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
방언이나 통역이 필요했다고 하고, 그 당시에 의료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병 낫는 역사가 있었다고 과거사로 돌리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전설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에든지 말씀을
들을 때 ‘지금’‘나에게’말씀하고 계시다고 믿어야 합니다.
3. 베데스다에 가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베데스다 못가에는 병고침을 맏기 위하여
많은 병자들이 물이 동할 때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걷지 못하는 38년 되 중풍병자도 병이 낫고자
물이 동하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는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일어나 걸었습니다. 작년에 어느 성도님이
월요일날 늦게 산에 올라와서 화요일, 수요일 이틀간 휴가를
내어 열심히 기도하며 은혜 체험한 것을 보았습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황금 같은 여름 휴가를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여
산에 올라온 그가 영적으로 힘을 얻어 지금까지 기관에서
봉사하며 얼마나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수양관이 나의 베데스다가 되려면 말씀을 사모하여
참석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합니다.
4. 나의 연고로 믿고 회개해야 합니다.
작년에 저에게 큰 갈등이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철야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섭섭했던 분들을 만나 모든 것이 내 연고였다고 잘못을
시인하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간에, 고부간에,
교사간에, 부부간에 갈등이 있는 분들은 모든 것을 내 잘못으로
돌리고 상대방이 잘못했으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고 자신이 잘못했으면 용서를 받고 회개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요나가 탔던 배가 풍랑을 만나니까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이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그 제비가 요나에게
뽑히게 되었습니다. 선상에 있던 사람들이 너에게 죄가
있어서 풍랑이 났구나 했을 때 요나는 그들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여 “풍랑이 난 것이 나의 연고이니 나를 바다 속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12:1이하 말씀에도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갔습니다. 그는 양떼와 소떼가
많은 부유한 집이 있고 그 옆에 가난한 집이 있었는데 하루는
부유한 집에 손님이 와서 대접할 양을 잡아야 했는데 그
부유한 집에서는 자기 집 소나 양을 잡지 않고 가난한 집
주인이 가장 아끼고 귀여워하는 하나밖에 없는 작은 암양새끼를
빼앗아다가 손님을 대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크게 노하여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마땅히 죽을 자라 하며
그 암양새끼를 4배나 갚아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나단은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남의 이야기로만
듣고 있던 다윗이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한 것을 시편 51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은 대신 ·대인
관계가 깨어지고 서로 일이 잘못되면 누구를 탓하기 전에
먼저 나의 연고라고 믿고 회개할 때에 요나나 다윗과 같이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부모가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내 탓으로 돌릴 때에 요나도 살고 배에 탔던 많은
사람도 살고 니느웨도 살았던 것처럼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살고 국가도 살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수양관 집회를
영적인 베데스다로 믿고 병든 자는 건강의 자비를 얻고,
죄 문제로 고민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속죄함
받는 자비의 은총을 받아야 하며,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는 이번 기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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