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은혜받은 우리는

본문 | 고후7:1-12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고후 7:1-12

누구나 교회에 나오면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은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몸이 아픈 자는 건강을 얻어야 은혜를 받은 줄 알고,  빚을 갚을 길이 없는 자는 채권자가 그 빚을 탕감해 줄 때 은혜를 받은 줄 압니다. 또 사업이 망했는데 교회에 다니면서부터 일어섰다는 등 여러 가지로 은혜를 말하지만 이러한 일은 세상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계에도 이와 같은 혜택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속죄함을 얻어 구원받고 영생을 얻은 것이 최대의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 당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뜨고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치 아니했다면 그들도 현실적인 육체의 은혜만 받았지 내세의 영적인 구원의 축복은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인 고린도후서 7:1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는 말씀이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인간 전체를 사랑하시고 누구에게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자만이 교회에 나오게 됩니다. 에베소서 2:12 이하에 보면 믿기 전에는 우리가 이방인이었고 그리스도 밖에 있었으며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를 알아서 내가 죄인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속죄함을 받아 구원받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이 하나님의 최대의 은혜요 사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마귀에게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하늘의 시민권을 지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인 것을 믿기 바랍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동산 안에 있는 선약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으나 아담은 이 약속을 어겼으므로 저주를 받아 에덴에서 쫓겨났고 그 결과로 그들에게 죽음이 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켰으므로 그의 식구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도 약속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기근을 당하고 아내를 빼앗겼으며 친척이라고는 하나뿐인 롯마저 떠나 아주 외로운 인생길을 갔습니다. 그후 애굽으로 내려가서도 수많은 역경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참았기 때문에 가나안의 축복을 그의 자손들이 물려받게 되었고, 전 세계의 유태 민족들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39에 보니 율법에 속한 선진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약속이 복음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이루어진 것을 믿기 바랍니다. 그 약속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에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선지서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메시야에 대한 이 약속을 믿고 기대를 갖고 살았으나 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오늘날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한복음 1:11 이하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하나님의 최고의 언약과 약속이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린도후서 6:18에 보면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 했듯이, 이 말씀이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약속을 가진 자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그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 자체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요 나는 그의 자녀라는 사실이 확실히 믿어질 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최고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은혜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더욱 잘 알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잘 알기 전에는 신앙 생활을 해도 무엇이 물이고 무엇이 불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철이 없었는데 은혜를 받고 보니 물불을 가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철이 든 신앙은 신앙의 성숙을 말합니다.

은혜 받은 우리는 은혜 받지 않은 자와 달라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6:14-16에도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그러므로 은혜 받은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해야 될 줄 믿습니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실존이 믿어지고 그의 구속사가 믿어지면 자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게 됩니다. 은혜를 받고 나면 하나님이 두려워집니다. 그 전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일도 은혜를 받고 나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내주하셔서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영과 육을 깨끗케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5에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발을 벗으라”고 했고, 여호수아 7:10 이하에도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아이 성 전투에서 실패했을 때 그 백성들을 성결케 하고 기다리라고 했으며, 이사야 6:1-7에서도 웃시야 왕이 죽을 때 보좌에서 하나님의 옷자락을 보고 이사야는 바로 자신의 부정한 것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그것을 볼 때 인간과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는 반드시 영과 육이 깨끗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깨끗해야 하겠습니까?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에도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 영과 혼과 몸이 흠이 없게 보전되기를 원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이 육신을 아무렇게나 세상에 내놓은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이며 그리스도의 지체(6:15)입니다. 은혜 받은 우리는 영과 육을 깨끗케 하여 온전히 거룩함을 이루는데 육신을 더럽혀서는 안 될 줄 믿습니다.

3. 은혜 받은 자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자는 서로의 마음에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끼리 서로 마음에 있으면 가족적인 분위기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서로서로 마음을 줄 수 있는 교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4. 서로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7:4에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은혜 받은 교회는 서로 허물을 덮어 주고 자랑할 것만 들추어서 자랑해야 될 줄 믿습니다. 100가지 중 99가지 좋지 못한 점이 있어도 1가지 자랑거리가 있으면 그 한 가지만 자랑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나 다른 사람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5. 서로 위로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자는 어려움을 당한 신자들이나 이웃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하며 위로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번에 때아닌 폭우로 수해를 당한 이재민이 교회에도 있고 교회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은혜 받은 우리는 이럴 때 그들을 찾아보고 필요한 것을 도우며,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6. 은혜 받은 자는 책망을 들을 때 기쁘게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책망을 많이 했습니다. 이 교회에는 신앙적으로 파벌이 많았고 음란했으며 우상의 제물과 성찬 참여 그리고 은사 문제 등으로 서로 뽐내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 번씩이나 편지로 책망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8에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합니다. 책망을 지나칠 정도로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상대방에서 관심이 있고 사랑이 지나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린도 교회를 책망해 놓고 그들이 오해할까봐 근심하고 후회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망은 오히려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 책망을 통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더욱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간 것을 믿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교회도 은혜를 받았으니 고린도 교회처럼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항상 영과 육을 깨끗이 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될 줄 믿습니다. 또한 교인들의 마음을 서로 알아서 위로해 주고 책망을 달게 받음으로써 잘못을 빨리 회개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사랑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