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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 2
우리 나라에는 곳곳에 많은 교회가 있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왜
교회에 다닌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만
왜 유독 예수를 믿는지 불신자들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자들도 왜 예수를 믿는가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다시 검토해 봐야 할 줄 믿습니다.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심판을 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7 이하에도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판은 영의 심판입니다. 영의 심판을 면한 자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 혼자만 심판을 면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인류가 이 심판을
면해야 하기 때문에 바울은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멸망이므로 누구나 면해야 합니다.
심판에는 영의 심판과 육의 심판이 있습니다. 영의 심판은
멸망(둘째 사망)이고, 육의 심판은 채찍과 징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영의 심판을 면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두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믿지 않는 자들의 경우로서 “나는 네가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할 그때에 불신자들의 통곡 소리가
드높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주님이 나타나실
때 베드로전서 1:7처럼 칭찬과 영광과 존귀함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3절에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라고 바울은 권면했습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것은 진리로 띠를 띠라는 것(엡 6:14)이고,
근신하라는 것은 정신차리라는 것(벧전 4:7), 깨는 것(5:8),
다시 말하면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심판을 면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있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나 혼자만 심판을 면한다는 것은 세상의 이기주의자들이나
개인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자들의 생각입니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골육 친척, 그리고 우리의 이웃 모두가 이
심판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고 교회를 모르는
자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4장은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에 보면 예수께서 승천 직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할 만큼 복음 전파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또한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전파하라는 이 의무를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전도하기에
때가 좋든지 나쁘든지 계속적으로 꾸준히 전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전도하는 열심히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1:1, 2에서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납해 줄 것을 두 번씩이나 부탁할 만큼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전도할 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대방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증거하다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여
살이 터지고 피가 흘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께서 주신
사명인 복음 전하는 데 힘썼습니다.
인간의 때는 기약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내일을 산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할 때를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긴박감 속에서
전파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양편에 있는
강도 중 한 사람이 운명하기 직전에 자기의 죄를 고백하므로
주님은 그가 낙원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운명 직전에도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저한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예수는 어릴 때나 청년 때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 잘 믿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이야기인즉슨
그 교회의 어느 장로 한 분이 교회에서 충성을 많이 하고
개척 교회도 3곳이나 세웠다는데 나중에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병이 들어 운명하게 되었답니다. 임종 직전이 되어
예배를 드리면서 “장로님 눈 감으시면 어디로 가지요?”했더니
“죽어 봐야 알지요”하더랍니다. 그 목사님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더 큰 소리로 물었더니 “가 봐야 알지요”하고는
그만 숨을 거두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지금 잘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주님 만날 때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부터 주의 일에 힘써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여 주님 만날 때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어야겠습니다.
전도는 전쟁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7에서 이것을
“선한 싸움을 싸운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선한 싸움이라는
말을 볼 때 전쟁이라는 표현이 걸맞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전도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안 먹힌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후퇴하면 마귀가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가 좋아할 짓을 왜 하고 다닙니까? 그러므로
전도할 때는 단단히 영적으로 무장을 하고 가서 정쟁에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귀가 점령하고
있는 심령을 전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할 때 무책임하게, 또는 무식하게 하지 말고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3 이하에 보면 말세에는 복음
듣기를 싫어하고 허탄한 소리 듣기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는 이들에게 전도하는
방법에 대하여 디모데후서 4:2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합니다. 몇 번 권하다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금방 돌아서지
말고 기독교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책망도
하고 이단에 이끌리지 않도록 성경 말씀을 가르치며 꾸준히
인내를 가지고 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자신의 생활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열심히 전도하는 자들에게는
상급이 따릅니다. 첫째 천국에서 최고의 상급인 의의 면류관을
받게됩니다.(딤후 4:8). 둘째 건강의 축복이 따릅니다(4:17).
셋째 악한 일에서 건져주십니다.(4:18)
이제 8월이 지나갑니다.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지나갔습니다. 해이해진 마음을 동이고 주님의
사명을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영적으로 무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게으르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 증거하는 교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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