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십자가의주님을 욕보이지 말자

본문 |히6:1-8

 

그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하니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니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전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히브리서 6 : 1 - 8

고대 로마에서 십자가는 죄의 대가로 최고형에 해당하는 형벌이었습니다.십자가는 받을 만한 자가 받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지은 자가 죄의 결과에 따라서 마땅히 받는 형벌을 말합니다.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인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십자가를 왜 예수님께서 지셔야 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받지 않아야 할 자가 받은 것입니다.예수님은 십자가의 형벌을 받을만한 죄를 저지른 일이 없습니다.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히브리서4 : 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상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최대의 모순이요 최고로 불합리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3 :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로마서6 : 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죄인인 내가 죄의 삯으로 져야만 했던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것입니다.그것이 곧 갈보리의 십자가인 것입니다.이사야 53 : 4 - 6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당담시키셨도가"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의 형벌로서의 십자가, 부끄러운 십자가가 아니라 영광의 십자가, 자랑스러운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십자가의 주님께 욕을 보인 자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이하를 보면 그들은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 유대인들, 로마 군인, 한 편의 강도 등입니다. 이들은 십자가의 주님을 저주하고 욕한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욕보인 자들이 이들만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십자가의 주님을 욕보이는 자는 교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십자가의 주님을 욕보이는 자입니까?

1. 항상 초보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

항상 초보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가 십자가의 주님을 욕보이는 자입니다.히브리서 6 : 1에 "그리스도 도(道)의 초보를 버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교회를 일생 동안 다녔어도 초보의 신앙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가 있습니다.그러면 초보의 신앙 상태에서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지 못한 자를 말합니다.히브리서 5 : 12 - 14을 보면,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초보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첫째는 성부의 의입니다.성부의 의는 공의를 말하고 그것은 곧 율법을 말합니다.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반대로 어기면 형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여호수아 1 : 7,8에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하면 공의를 이루게 됩니다.둘째는 성자의 의입니다. 성자의 의는 복음의 의요 복음의 의는 곧 십자가를 말합니다.누구든지 십자가의 주님을 믿으면 의룁다 하심을 얻게 되는데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령의입니다. 성령의 의는 생명의 의입니다. 로마서 8 : 1,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이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생명을 얻을 것을 성령이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의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지 못한 자가 초보의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경험한 사람은 환난을 이깁니다. 로마서 5: 1을 보면,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며,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데,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고 했습니다. 의는 곧 연단을 말합니다. 또한 젖을 먹는 신앙이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는 신앙을 말합니다. 그러나 초보 신앙을 가진 자는 연단이 없는자요 아직도 젖을 먹는 자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시험이 오고 환난이 오면 넘어지고 믿음에서 이탈하기도 합니다.이런 자가 십자가의 주님을 욕보이는 자입니다.

2. 하나님을 안 후에 하나님을 저버린 자

또한 하나님을 안 후에 하나님을 저버린 자가 십자가의 주님을 욕보이는 것입니다.여기서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이라 하는 것은 예수를 믿어 세상을 탈출했다가 다시 세상에 얽매여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간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 믿기 전보다도 더 악한 자가 됩니다. 베드로후서 2 : 20,21에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은혜 받았다고 하고 믿는 척 하다가 타락하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악하게 됩니다. 문제를 일으켜도 크게 일으키고, 교회를 비난해도 더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를 조금 알고 은혜를 확실히 체험하지는 못했으나 조금은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확실히 알면 잘 비난하지 않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적당히 아는 것 가지고 아는 척 해서 말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십자가의 원수요 십자가의 주님을 욕보이는 자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인간이라고 하지 않고 "이성 없는 짐승"이라고 베드로후서 2 : 12에 말씀했습니다. 또한 이런 사람은 베드로후서 2 : 1에 의하면 나중에 "거짓 선지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호색을 좋아하고 탐심을 품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욕하고 성도들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전도의 문까지 닫아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경험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야 합니다. 믿어도 확실한 신앙을 가진 가진 성도가 되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믿고 싶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십자가의 주님께 욕보이지 않고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3. '나는 이루었다' '나는 온전하다'고 하는 자

'나는 이루었다' '나는 온전하다'고 하는 사람은 교만하고 자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해 왔고 직분도 가지고 있으니 자기 신앙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믿음보다도 자신의 신앙이 더 좋다고 여기는, 신앙적으로 교만한 사람입니다.이런 사람이 십자가의 주님을 욕보이는 자입니다.

바울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빌 3 : 5-7).그런데"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고백했습니다(빌 3 : 12). 그리고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빌 3 : 16). 바울은 당시에 최고의 학부를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얻은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고 말한 것이며 계속해서 얻어야 하고 이루어야 할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다 된 줄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가장 잘 믿는다고 착각을 합니다. 사실 바울도 "자기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같이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고린도전서 11 : 1에서 말했으면서도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겸손하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모두 얻었다고 여기는 자는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빌립보서 3 : 17이하를 보면 이 문제로 사도 바울이 안타까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사울 바울과 같은 신앙의 모습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바울의 겸손은 예수님에게 배운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서도 겸손을 잃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법 아래에 있는 자

과거에는 법이 유명무실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법을 잘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살려고 몸부림쳤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면 법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법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않으니까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오늘날은 법이 너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난무하고 있는 것은 법이 너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법이 많이 생겨납니까? 그것은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법을 만들어서라도 도덕적인 사람이 되도록 하려는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그러나 법을 만들어도 법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우리 현실은 법이 오히려 사회를 망치고 있습니다. 형제간에도, 부부간에도, 이웃간에 자그마한 일을 해결하려고 할 때도 법으로 해결하려고 법정에 가고 있습니다. 양심적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삭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법은 사람을 제한하고 구속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법 아래 있다면 살 수 없습니다.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오늘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 : 14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 안에 있다면 은혜가 은혜되도록 해야 합니다. 은혜가 은혜되지 못할 때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안에 있다면 은혜 안에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도 사울을 갈라디아 3 : 1-3에서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우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면 성령으로 마쳐야 할 것입니다. 은혜 안에 있다면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십자가의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믿음 안에 있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주님을 욕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많은 은혜 속에 살면서도 그 은혜를 깨닫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많은 축복을 받았으면서도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이제는 십자가의 주님을 욕보이지 말고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