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도가 일한다

본문 |막9:14-18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마가복음 9 : 14-18

우리는 신앙 생활을 왜 해야 하는 것입니까? 교회는 왜 나가야 합니까? 사람들은 괴로워도, 답답해도, 상처받아도 교회를 나가는데 도대체 왜 나가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존재는 영적인 지도자의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영을 지배하는 자를 찾고 만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있고, 그 육체의 힘도 한계가 있습니다.베드로전서 1 : 24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영을 지배하는 자를 찾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오다가 그만두고 세상에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를 떠났지만 교회 밖에서 계속해서 다른 영적인 존재를 찾습니다.인간은 짐승이 아니기 때문에 부단히 지속적으로 영적인 지도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내용을 보면 변론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과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변론적인 신앙은 소용이 없습니다.참 신앙을 소유하는 데는 변론이 필요 없습니다. 변론은 신앙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체험적인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 변론적인 신앙

오늘 본문을 깊이 이해하려면 9장의 내용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마가복음 9장에는 두 가지의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세 자자 곧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에 변형되신 내용입니다.세 명의 제자는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의 영광과 변형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아 함께 대화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때 베드로는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그 곳에다 아예 초막 셋을 짓고 살자고 합니다(5절). 하나는 주를 위하여,또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또 다른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자고 합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 오셨습니다.

또 하나는 산 아래에 남아있던 제자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 제자들은 큰 무리가 둘러 서 있는 가운데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었습니다(14절).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16절) 그때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기를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고하는 것입니다.이들의 변론은 귀신들린 아이를 놓고 고치니 못 고치니 하는 것이었습니다.

변론의 신앙은 되느냐 안되느냐, 할 수 있느냐 없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변론은 어리석고 무식함을 나타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무식은 학문적인 무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석학이요 많은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것이 무식입니다.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낫 놓고 기역 자를 몰라도 하나님을 알면 유식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2 : 23에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여기서 무식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학문에 뛰어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6 : 24에 보면,바울이 베스도 앞에 섰을 때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고 더 나아가 해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빌립보서 3 : 7 이하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갈뿐더러 또한 모든 것이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 곧 무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민족이 망하는 것을 탄식했습니다 호세아 4 : 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치기를 6 : 3에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했던 것입니다. 변론이 어디서 나옵니까? 무식에서 나옵니다. 변론을 일삼는 자는 믿음에서 떠나고 맙니다.디모데전서 6 : 20 이하에 "디모데야,네가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변론은 분쟁과 언쟁을 가져옵니다. 또한 이론만을 남깁니다. 신앙은 이론과 변론이 아닙니다.

그러면 참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말씀에 항상 '예'하는 것입니다. '아니오'란 말은 이론이요, 변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니오'가 없고 '예'만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 : 18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 했고, 계속해서 20절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예'밖에 없습니다. 변론적인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자꾸만 '왜'라고 반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변론이 필요없습니다.

2. 체험적인 신앙

산 아래에 있던 아홉 명의 제자는 예수님의 변형되심과 영광스러 광채를 보지 못했으나 세 명의 제자는 모았습니다. 세 명의 제자는 체험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되 체험적인 신앙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체험적인 신앙에서 세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일하신다.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하셨습니다.창세기 1 : 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창조의 일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운행하셨습니다.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은 운행하시는 하나님, 행동하시는 하나님, 곧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십니다.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이 지구가 당장 멈출 수도 있습니다. 지구가 돌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증거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많이 표현했습니다.고린도전서 3 : 9에 "우리와 하나님은 동역자"라고 표현했고, 고린도후서 6 : 1에 "우리와 하나님은 동역자"라고 표현했고, 고린도후서 6 : 1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는 자"라고 했습니다.하나님께서 일하시되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시는 분이십니다.시편 139 : 1 이하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일거일동을 모두 아시고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과거, 현재, 미래 속에서 일하십니다 신약에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일하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으로 일하십니다. 소련이 열리고 중국이 개방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북한도 열릴 줄 믿습니다. 어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이 일하시면 됩니다. 어떤 지도자가 하지 못하는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면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질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일하시면 고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십니다.

2) 믿음이 일한다.

하나님은 일하시되 믿음이 있는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지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을뿐더러 축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 : 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역사를 이루십니다.마가복음 16 : 17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표적은 하나님의 역사요 기적이요 능력입니다.믿음이 있을 때 이 하나님의 표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 : 28 이하에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믿으면 예수님이 하신일도 할 것이요 그보다도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요한복음 14 : 12 이하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일 일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3 : 1 이하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말씀이 있습니다.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한 것은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입니다.그들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능력 있는 이름을 믿었을 때에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된 것입니다. 이 기적이 일어났을 때에 이를 본 사람들이 놀랐습니다(11절). 그리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했습니다 (12절). 그를 일으킨 것은 자기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하면서 그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믿음이 일합니다

사도행전 20 : 7 이하에 보면,유두고가 창문에 걸터앉아서 바울의 설교를 듣는 중에 졸아서 떨어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이 살렸으나 바울의 능력이 살린 것이 아니라 바울의 믿음이 살린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삼천 명이 회개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 또한 베드로가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베드로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요. 바울이 일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믿음을 통해서 일하신 것뿐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일을 이후는 데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하나님은 일하시되 아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지 않고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오늘 본문 19절 보면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제자들을 책망했습니다. 아홉 명의 제자가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 주지 못한 것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믿음이 있으면 능히 나가게 했을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일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합니다 "네가 믿느냐" "네 믿음대로 되리라" 믿음이 없으면 의심합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께서 물 속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를 건져내시고 하시는 말씀이 "왜 의심하였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기도는 아주 솔직한 기도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연약한 믿음을 도와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3) 기도가 일한다.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가 믿음을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기도는 믿음으로 해야 할 줄 믿습니다. 믿음 더하기 기도는 응답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기도 더하기 믿음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하다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기도이어야 합니다.그래야 병든 자를 일으킵니다. 야고보서 5 : 15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은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입에서는 이론과 변론만 나오지만 기도하는 사람에게서는 능력이 타나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고 하셨습니다 (눅 18 : 1).사무엘은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사무엘상 12 : 23에 말씀했습니다. 기도를 하다가 쉬는 것은 쉬지 말라 하라고 데살로니가전서 5 : 17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쉬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까? 그것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존재는 영의 지도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로 가능합니다. 이제 본문을 봅시다.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지 못한 제자들이 조용한 시간에 예수께 묻습니다. 28절에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으니라"고 했습니다(29절).제자들에게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나 기도는 움직입니다. 예레미야 33 : 2,3을 봅시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기도하면 일하시겠고, 즉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가 일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입으로 변론하는 신앙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말씀에 굳게 서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입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기도로 일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슴에 대해서는 언제나 '예'와 '아멘'만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자세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기도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시는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