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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잗르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태복음
19 : 16-30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립보서
3 : 12-16
이 세상에는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살이인
것 같습니다. 의욕과 용기를 가졌다가도 포기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공하는 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실패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무너지는 일이 많습니다. 사업이 무너집니다. 자녀의 진학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현실은 크든 작든 하고
있는 일들이 잘되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맙시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는 데도 불구하고 잘되지 않았다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면서 시작합시다. 그동안 기도하지 못했으면 이제부터
기도합시다. 전도하지 못했으면 전도합시다. 충성하지 못했으면
충성합시다. 처음 열심과 신앙을 읽어버렸으면 다시 되찾읍시다.
그리고 우리의 일을 열심히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조금 전에 읽어 드린 말씀을
가지고 '교회 창립 제 16주년, 이제부터다!'라는 제목으로
피차 말씀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 나라도 이제부터다.
우리 나라는 반 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근래에 와서는 아주 작은 나라에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유엔에 가입하여
국제 시대의 조류에 합류하게 되었다고도 자랑합니다. 이
모두가 자랑할 만한 일입니다만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은
우리 나라도 모든 일이 이제부터라는 사실입니다.
그 동안 외국에 보여진 우리 나라의
이미지는 참으로 부지런하고 친절하며 정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외국에 이민 간 사람들도 그 나라 사람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일찍부터 일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를 방문한 외국 관광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미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게으른
나라로 소문났습니다. 그리고 못된 나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어떤 일본 관광객이 우리 나라에
와서 택시를 탔다가 가방을 날치기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에 대한 뉴스가 일본 전 지역과 미국에 보도되었다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하는 말이 한국에 가면 절대로 택시를
타지 말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창피스러운 일입니까?
우리 나라가 전보다도 잘살게 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좀 살게 되었다고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까지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벌고 쓰는 일을 생각합니다. 오늘날
고등 실업자가 늘어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일자리가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지금 각 공장이나 회사마다 일꾼이
부족해서 난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이유로 인한 것입니까?
그 것은 힘들여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달에 많은 액수의
돈을 버니까 웬만한 직장은 들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돈을 더 많이 주는 학생들을 찾아 과외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 학생 한 두 사람만 가르쳐도 자가용을 몰고다닐 수
있는데 누가 땀흘리며 일을 하겠습니까? 오늘날 서울 대학생들의
이미지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들은 입는 것, 먹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학생들로 알려졌었습니다. 소위 공부벌레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고요. 학교 내에 자가용을 타고 등교하는
학생이나 고급 승용차가 들어오면 별로 좋게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돈을 많이 버느냐, 누가
얼마짜리 과외를 하느냐에 관심이 많고 자가용을 굴리고
잘 입고 잘 먹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일하기 싫어한다는 것은
나라가 망할 징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부터입니다. 전처럼 부지런해야
하겠습니다. 친절해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하면 우리의 경제나 국가적 이미지를
회복할 줄 믿습니다.
2. 우리 가정도 이제부터다.
가정은 만남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부부간의 만남, 부모와 자녀와의 만남, 형제간의 만남에서
행복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 속에 이
아름다운 만남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다는 것은 뭔가 벽이 있고 막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가정에 기쁨이나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의 팝 그룹인 '뉴 키즈 온
더 블록'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오늘
많은 자녀들이 방황하고 소리를 지르며 야단법석입니다.
왜 그들이 방황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온전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그 스트레스를 밖에서
해소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가정도 이제부터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물론 자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지만 나이
들어 점점 늙어갔습니다. 그러다가 100세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낳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행복을 찾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100세부터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난의 대명사
욥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의 가정은 본래 행복했었습니다.
욥기 1 : 1을 보면, 그는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2절을 보면, 그는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3절을 보면, 그의 가정이
얼마나 다복하고 행복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식들의
생일이 돌아오면 잔치를 배설하고 온 가족이 함께 축하하며
즐겼습니다. 욥은 잔치가 끝나면 자식들이 하나님 앞에
혹 범죄하지 않았나 해서 제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이런
욥의 가정에 시련이 닥쳐옵니다. 한 순간에 자식을 다 잃었고
모든 소유를 빼앗깁니다. 아내마저 남편인 욥을 떠나고
맙니다. 가정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욥이 온갖 시련과 고난을 이긴 후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배로 축복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부터 욥의 가정은 다시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이제부터인 줄 믿습니다.
3. 우리 교회도 이제부터다.
세계의 교회들이 한국 교회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대만만하더라도 한국 교회를 본받으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교회들이 한국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0년에 침례교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었는데, 그 때에 참석한 각국의 대표들이
특히 한국 교회의 새벽 기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행사 기간 동안 새벽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각 교회를 탐방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선교
1세기 동안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성장은 거의 기적적인 성장을 이룬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교회가 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급속도로 선장하다 보니
문제점도 있습니다. 많은 사이비 종교가 생겨났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기독교 안에서는 많은 교파가 난립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서 기독교가 연합해 보려고 온갖
노력을 해 보지만 쉽게 되지 않습니다. 연합 단체를 형성하면
그 안에서 또 싸웁니다. 한국 교회가 그 동안 부흥했지만
사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교회들이 각성하고 우리와 하나님과
연합하게 한 십자가로 하나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다시
시작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에 창립 제 16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급속도로 큰 성장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교회 학교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도
이제부터입니다. 개척 당시에는 얼마나 열심히 있었는지
모릅니다. 전도하고, 봉사하며, 기도하는 일에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식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가졌던
그 열심, 그 헌신과 충성, 그 은혜와 사랑을 다시 회복하여
새롭게 시작하려고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4. 나도 이제부터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어떤 청년이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16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절).
이 주님의 말씀을 들은 그는 계명을 다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본문 20절
이하를 보면,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 청년은 계명을 지켰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순간이
시작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는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마시려는 잔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주님이 왜 십자가를 지시려고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높아 지려고만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제부터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바르게 알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미디안 광야의 모세는 팔십 세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부르심은 곧 사명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 : 4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9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심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늙었습니다. 소망도 비전도 없습니다. 삶의 의미도
없습니다. 장인의 양무리를 치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이런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의 부르심은
곧 이제부터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과거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그
순간 모세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 팔십 세 때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그는 대단히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는 훌륭한 인격을 갖췄고,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학문 또한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 : 5 이하에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7-9절)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
: 12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6절에
"오직 어디에 이르렀든지 그대로 계속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는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생각해 봅시다. 실망하고
낙심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다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갔습니다. 또한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던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는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제자들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제부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예루살렘에 모여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거기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그 순간 제자들은 이제부터였습니다. 그 때부터 그들은
성령의 사람으로 전과 같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업이 안되고 있습니까? 아니
부도가 났습니까? 너무 낙심하지 맙시다. 이제부터입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자녀가 반항하고 부부간에도 대화가
되지 않습니까? 가정도 이제부터입니다. 신앙 생활에 나태하고
열정이 없습니까?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신앙 생활도 이제부터입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처음 사랑, 처음 믿음, 처음 축복을 회복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더 많이 전도하고,
더욱 헌신하며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합시다.
바울의 고백처럼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이제부터 시작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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