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중심에 불붙자

본문 |렘20:7-9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예레미야 20 : 7-9

사람은 불이 있어야 살아갑니다. 불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불 즉 빛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황합니다. 뿐만 아니라 불이 없으면 죽습니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불이 없으면 얼어 죽기 쉽습니다. 그래서 불은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아주 오묘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조금만 멀어지면 빙산이 되어서 우리는 얼어 죽고 맙니다. 반면에 태양과 가까워지면 너무 뜨거워서 타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구를 얼지도 타지도 않는 위치에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특별히 빛 곧 불에 대해서 고마움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잘것없는 식물 하나도 빛이 있어야 잘 자랍니다. 빛이 없으면 죽습니다. 빛은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빛이 있어야 치료가 됩니다. 겨우내 습기 때문에 생긴 곰팡이는 빛이 있으면 곧 사라집니다. 옷에 생긴 곰팡이도 빛을 쬐면 없어집니다. 이렇듯 빛은 치료를 합니다. 레이저 광선으로 치료하는 것이 바로 빛으로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 곧 불이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불덩어리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구 저변에 불이 있어서 그 불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불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체온이 있습니다. 체온은 열입니다. 열은 곧 불입니다. 이렇듯 모두 불이 붙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불 곧 빛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 : 3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십니다. 요한복음 1 : 9에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 : 14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빛 자체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 자체가 아닙니다. 다만 빛을 받아서 비출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려면 참빛 되신 분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셔야만 빛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빛이 있어야 불이 붙습니다.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는 빛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이 붙었습니다. 본문 9절을 다시 보면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은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세상은 불이 붙었다.

세상에는 불이 붙었습니다. 무슨 불이 붙었습니까? 전쟁의 불이 붙었습니다. 우리 민족도 약 백여 년 동안 전쟁의 불 속에 시달려 왔습니다. 오늘 우리 역사가 이 전쟁의 불덩이 속에 존재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것은 나라와 나라와의 싸움이요 곧 영토를 위한 분쟁이었습니다.

또한 사상적인 불이 붙었습니다. 오늘 우리 젊은이들 가운데 사상적인 불이 붙어서 인생을 망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 알지 못해서 생겨나는 일들입니다. 지금도 공산 치하에 있는 사람들, 특히 북한의 백성들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은 사상적인 불이 식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초 강대국을 자랑하던 소련이 없어진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지금은 핵무기를 가지고 빵과 바꿔서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또 다른 불 때문에 심각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제의 불입니다. 이 불이 얼마나 붙었는지 경제 전쟁이라고까지 표현을 합니다. 유럽 공동체가 경제적 통합을 이루더니 이제는 미국이 남미와 경제적으로 손을 잡고 유럽 공동체와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는 전 세계에 타오르고 있소, 중국의 경제도 상승세에 있으며, 대만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도 경제적인 불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제는 계속 불경기를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불붙었습니다.

2. 인간도 불붙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사람들에게는 정치의 불이 붙고 있습니다. 지금 선거의 불이 대답합니다. 너무 과열된 상태에 있어서 폭발하기 직전입니다. 공천에 떨어졌다고 난리를 피우고, 꼭 당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정권을 잡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경쟁의 불이 붙었습니다. 특히 교육의 불은 대단합니다. 작년에도 대학입시에 실패한 학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 떨어진 학생 자신보다도 부모가 더 실망하고 낙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학부모들에게 교육의 불이 더 강하게 붙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새 학기가 되어서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금년에도 이 입시경쟁의 불만은 식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불이 붙되 가정에 불이 붙었습니다. 분쟁의 불이 붙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이혼율이 자꾸만 높아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이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부부간에는 분쟁의 불이 붙으면 안됩니다. 애정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불신의 불이 붙을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불평하고 원망하고 분쟁하는 불이 붙을 것이 아니라 동족애의 불이 붙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렇게 인간에게 좋지 않은 불이 붙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볼은 쉽게 식고 맙니다. 우리나라 국민학교와 중학생들이 전 세계 수학과 과학 경시대회에서 일들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렸을 때는 이렇게 불이 붙어 있는데 대학만 들어가면 식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학생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는 열심히 놀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부의 불이 붙습니다. 그 때부터는 우리 나라 학생들이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불이 붙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식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3. 우리는 영적인 불이 붙어야 한다.

세상의 불과 인간적인 불은 분쟁을 가져오고 시기를 가져오며 원수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불이 붙어야 합니다. 사람은 영적인 불이 붙으면 삽니다. 하나님과 불이 붙으면 세상의 불이 자연적으로 꺼지고 맙니다. 대립하고 원수 맺는 불이 꺼지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불이 붙게 됩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사업을 하던 사람도 하나님의 불이 붙으면 진실하고 정직하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불이 붙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이 영적인 불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인간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깁니다.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보다도 사람을 더 의식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고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행동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사람에게 붙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대해서 불평을 잘합니다. 원망하고 비판을 잘합니다. 은혜로 감싸고 덮어주려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교회의 일에 대해서도 비협조적입니다. 협력을 하지 못할 망정 방해를 하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불이 붙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악의 불이 붙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예레미야 1 : 5에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라면서 이를 거절합니다. 6절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이라 하지 말고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7절). 그리고 약속해 주시기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고 했습니다(8절). 뿐만 아니라 그에게 말씀의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9절에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견고한 성읍과 쇠기둥과 놋성벽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절). 이러한 말씀을 들은 예레미야는 불이 붙었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불이 붙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의 불이 붙으면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불이 붙으면 후회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 기억할 일이 있습니다. 불이 붙되 중심에 붙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영의 호소가 있고 육의 호소가 있습니다. 육의 호소는 양심을 때립니다. 영의 호소는 중심에 호소합니다. 양심의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중심의 사람이 구원받습니다. 양심적인 호소는 도덕적인 호소요 중심의 호소는 영적인 호소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 : 7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양심으로 회개하라. 양심으로 기도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모두 중심으로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 : 35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되 중심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양심은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중심은 진실하게 만드셨습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아름다울 미를 말합니다. 선하다는 말은 착할 선을 말합니다. 그리고 진실하다는 말은 참 진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진선미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양심의 사람일지라도 변덕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심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에 진실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선한 일을 합니다. 진실해야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심의 사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의 사람을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중심이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시편 51 : 6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51편을 쓴 다윗은 하나님께 진실을 구했습니다. 10절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복음을 전할 때 조롱을 당하고 치욕과 모욕을 받았습니다. 본문 7절 이하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는 말씀을 선포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심에 불이 붙어서 선포하지 않을 수 없음을 또한 고백합니다. 9절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고 했습니다. 중심에 불이 붙으면 자기가 하기 싫어도 합니다. 중심에 불이 붙은 사람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예레미야와 같은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중심에 불이 붙어서 가만히 있으면 견딜 수 없어 결국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중심에 불이 붙지 않으면,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습니다. 중심에 불이 붙지 않으면 기분 좋은 날은 충성하고 기분 좋지 않은 날은 불평을 합니다. 이것은 바람직한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마음, 한 가지 자세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중심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에 불이 붙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중심에 불이 붙으려면 진리의 영이 와야 합니다. 14 : 6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바로 이 성령이 와야 중심에 불 붙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진실하게 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 해야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 하려면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말씀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에 힘쓰고, 말씀과 은혜의 자리에 있다가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