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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로새서 3 : 2
골로새서는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 교회의 설립자는 에바브라입니다. 골로새서 1 : 7에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라고
했고 4 : 12에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는 에바브라가 목회하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는 이방인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입니다. 바울은 이 지역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감옥에 있을 때에 에바브라를
통해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소식을 전해 듣고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쓴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제는 다름 아닌 이단의 문제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박해가
일어나자 유대인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 골로새 지역에까지 오게 되었고 결국 교회 안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본래 순수한 복음을 전해 들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교회안에
들어온 유대인들에 의해서 율법주의와 헬라철학 그리고
동방의 신비주의를 융합시킨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은 큰 혼돈에 빠졌습니다. 유대교의 잔재인
먹는 음식을 규정하고, 안식일을 준수하며 할례를 행해야
하고, 중보자로서의 천사를 숭배해야 한다는 사상이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지혜 또는 지식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영지주의와
육체를 약하게 보는 금욕주의 등이 교회 안에 들어와 순수한
복음에 대해서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사정을에바브라가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가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사정을
에바브라가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가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이때 바울이 이단을 경계할 목적으로 쓴 서신이 골로새서입니다.
성경을 봅시다. 2 : 8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했고, 16절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했으며, 17절에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은 국가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대단히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진리도 대단히 혼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골로새서
전체에 나타난 말씀을 가지고 "위에 있는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아버지 안에 있자
사람들은 위급함을 당할 때에 흔히 '아버지'를
찾습니다. 또한 깜짝 놀랐을 때에 '아버지'를 부릅니다.
특히 여자들이 아버지를 잘 부릅니다. 왜 아버지를 부르는
것입니까? 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든든하고 힘이 됩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아버지는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부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싸우다가도 저 쪽에서
아버지가 오시면 용기가 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얻어맞다가도
아버지 때문에 금방 전세가 역전됩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다가 힘들고 할
수 없을 때 아버지께 맡기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답답할 때 '하나님!'하고 크게 부르면 속이 확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하나님, 아버지!'하면
이것은 친근한 정도를 넘어서 하나님과 내가 영적으로 일대일
관계요 직선적인 관계인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많이 표현했습니다.
바울 서신의 각 서두를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는
말을 거의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골로새서만은 아버지라는
단어를 먼저 사용하여 "아버지 우리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1 : 2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3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고 했으며, 19절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란
이름을 일반적인 대명사로 부르는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하나님'하면 무섭고
두려운 느낌이 듭니다. 잘못한 것을 벌하시고 책망하시는
분으로 느껴지기 쉽지만 '아버지'하면 다정하고 자상한
느낌이 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되시기도 하시지만 믿는
자들에게 친근한 아버지가 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2 : 1에 의하면,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12절에 의하면,"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으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에베소서 2 : 18에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속이 된 것입니다. 19절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오직 아들이어야만 합니다. 아들만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아무 사람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부자지간이
아니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자식이어야만 아버지라고
마음 놓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아들이라고 자처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은 자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누가 아들이 됩니까? 로마서
8 14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가
아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영은 양자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로마서 8 : 15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된다면 나는 그의 자녀입니다. 요한복음 1 : 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대통령일지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십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큰 축복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돌아볼 뿐만 아니라 필요를
채우시고 자식에 대해서 책임을 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것은 오늘날 아버지에
대한 혼란이 왔다는 것입니다. 박태선 씨는 자기를 일컬어
'영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영적으로 낳았다고 해서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서울의 모 이단 교회에서는 목사를 일컬어 아버지라고 호칭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일컬어
'어버이'로 호칭을 합니다. 누가 아버지입니까? 이렇게
아버지의 혼란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안에 있으면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은혜의 찬송 '나의
하나님'의 후렴을 보면 그 아버지는 죄인을 부르신 아버지십니다.
우리를 구하신 아버지십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푸시고 축복해
주시는 아버지십니다.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2. 주인 안에 있자
우리 시대는 아버지에 대한 혼란뿐만
아니라 주인에 대한 혼란이 왔습니다. 헌법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과연 국민들이 주인입니까?
국민들의 소리에 의해서 국정이 이루어지고 민의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까? 주인에 대한 혼돈이 왔습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실제로 국민이 아니라 정치가입니다. 힘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정치를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보면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자신들을 먼저 생각하고
당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국민들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통치하고 내가 속한
당이 집권당이 되면 그만이라는 식이니 주인이 바뀐 셈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국민입니까? 국민도 아닙니다.
대통령입니까? 대통령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한 기업체 안에 주인은 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노동조합이 결성되어서 그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서로 주인이 되겠다고 하니
어찌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회사가 잘 될 리 없습니다.
직장마다 주인에 대한 혼돈이 왔습니다.
가정에도 주인에 대한 혼돈이 왔습니다.
남편이 주인인지 아내가 주인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사회 어디를 보아도 무질서하고 어지럽습니다. 주인이 바로
인정되어야 하겠습니다.
골로새서 2 : 6,7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고 했습니다. 주라는 말은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인 안에서 행하고, 주인
안에 뿌리를 내리라는 것입니다. 그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골로새서 2 : 2에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주인)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습니다. 3절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그(주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십니다.
9절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주인) 안에서는 손으로 하지 않는
할례를 받습니다. 11절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 안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됩시다.
3. 위에 있자
3 : 1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했고, 2절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치
말라"고 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방문해 보면
수중 위에 집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습기가 많으니까
땅 위에 집을 짓지 않고 물 위 높은 곳에 집을 지은 것입니다.
땅이라는 현실 세계는 약육강식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서로
물고 뜯고 합니다. 그러나 위에 있으면 그곳까지 올라오지
못합니다.
'위에 있자'라는 말생각도 마음도
아버지 안에, 주인 안에 있자는 말입니다. 위에 있다는
말은 영에 있다는 말이요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이요 말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위에 있어야 합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위에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3장에서
위에 있으라고 하면서 위에 있는 아내, 위에 있는 남편,
위에 있는 자녀, 위에 있는 부모, 위에 있는 종, 위에 있는
상전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위에 있는 아내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 아내는 주 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입니다(18절).
어떤 남편이 위에 있는 남편입니까? 그 사람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19절). 위에 있는 자식은
어떤 자식입니까? 그는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입니다(20절).
위에 있는 부모는 어떤 부모입니까? 그는 자녀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격노케 하지 않는 부모입니다(21절).위에 있는 종은
어떤 종입니까? 그는 눈가림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는 종이
아니라 오직 주인을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22절). 무슨 일이든지 주님께 하듯 육체의 상전에게도
그렇게 하는 종입니다(23절). 그러면 위에 있는 상전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의와 공평으로 종들을 대하는 자입니다(4
: 1). 바로 이런 사람들이 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위에 있으면 땅에 있는 것은
죽여야 합니다.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이니라"고 했습니다. 부정을 일삼고
욕심을 내며 음란한 이 모든 것은 땅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죽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8절에 "악의와
훼방과 부끄러운 말"을 버려야 합니다. 거짓말도 버려야
합니다(9절). 우리는 위에 있는 자로서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입니다(10절).
4. 아버지 안에 살자
우리는 아버지와 상담하고 아버지와
대화합니다. 가정에 양식이 떨어지면 아버지가 걱정합니다.
등록금이 필요해도 아버지가 먼저 걱정합니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책임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 안에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 안에 사는 것은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을 자식의 특권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아버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니까 무엇을 구하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들어주실 것이고 또
시행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곧 아버지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 안에 사는 것은 깨어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4 : 2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듯이 하나님 아버지께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서 4 : 6,7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평강을 주십니다.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감사는 아버지 안에 있는 삶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위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안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인 안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위에 있으면 이 땅에 있는 문제도 해결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래에 있는 것을 가지고 괴로워하고 고통 당하지 말고
위에 계시는 아버지 안에 있으므로 그 아버지가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삶이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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