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사람이 되어 새롭게 살자

본문 |엡4:17-24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의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 : 17-24

오늘 우리는 매우 혼돈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너무 무질서합니다. 예의도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를 찾아보기 힘든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식이 부모를 목 졸라 죽이는 무서운 시대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의 권위가 무너지니까 각 지도자들에 대한 권위가 무너지고, 학교에서는 스승의 권위가 무너지고,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까지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모의 권위가 침해 당하는 위기까지 왔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과연 새로워질 수 있습니까? 새로워질 수 있다면 무엇으로 가능하겠습니까? 힘으로 됩니까? 물질로 됩니까? 아닙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됩니다(슥 4 : 6).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 : 5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면 내가 새로워 지고, 가정도 새로워 지며, 국가도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 사랑 큰잔치'의 날입니다. 많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에베소서 4장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새 사람이 되어 새롭게 살자'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인간의 창조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은 어머니의 태에서 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삼라만상 우주를 만드시고 맨 나중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만드실 때는 말씀으로 만드셨습니다. 말씀으로 '있으라'하면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만드실 때는 자기 형상대로 정성을 다해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영과 육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바보스럽고 미련하게 보여도 만물의 영장입니다. 짐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잘 훈련되고 길들여진 동물보다 못하게 보일지라도 그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존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다는 것이요 하나님과 같이 영적인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영은 생명입니다. 이 영이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은 더 더욱 믿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죽으면 지옥이나 가라'고 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왜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사람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위기나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인간입니다. 죽음 앞에 놓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이 땅에 무신론자는 없습니다. 다만 불신론자가 있을 뿐입니다. '나는 하나님 같은 것 믿지 않아, 하나님이 어디 있어, 죽으면 그만이지, 신이 어디 있어,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 진짜로는 존재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막상 죽음 앞에 서게 되면 '아이구 하나님'하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로마서 1 : 19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사람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21절에 보면,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인정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야 자기 멋대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이 없어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고, 누구의 간섭이나 제한을 받을 것도 없으니까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큰 위기에 부딪치면 그 때야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간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자연적인 존재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육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또한 중심도 있습니다. 중심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흔히 '중심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중심이 없다는 것은 '이랬다, 저랬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육체는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마음 곧 양심은 선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중심은 진실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진선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작품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간을 보면 진실한 사람이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 없습니다. 요즈음 세상은 진실하고 선하면 바보 취급 당하고 무능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진실 가지고는 통하지 않습니다. 요령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2. 인간의 타락

하나님께서 진실하게, 선하게, 아름답게 창조한 인간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육체가 추하게 되었고, 선한 양심이 악하게 되었고 진실한 중심이 거짓 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의인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 : 10). 선을 행하는 자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 : 12). 모두가 죄인입니다(롬 3 : 23).

인간이 타락하여 육체가 추하게 되자 음란한 짓을 합니다. 그 결과로 에이즈(AIDE)란 병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음란한 인간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또한 사람의 양심이 악해졌습니다. 얼마나 악해졌습니까? 동서가 잘되고 형이 잘살게 되니까 죽이고 싶도록 미워집니다.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촌이 아니라 형제간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악해도 보통 악한 것이 아닙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것이 아니라 '너 죽고 나 살자'는 정도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 타락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타락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로마서 3 : 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는 의로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죄는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창3장).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자유스럽게 지낼 수 없습니다. 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로마서 6 : 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9 : 27에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죽음은 죄의 대가인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대가로 형벌 제도가 생겨났습니다.

사실 인간이 죄를 짓고 난 다음부터 진정한 만족이 없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 때에는 부족한 것을 몰랐습니다.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으며,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추방 당한 후로는 땀을 흘려야 하고 애를 써야 했습니다. 일을 해도 만족이 없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자꾸만 더 욕심을 냅니다. 그래서 갈들을 겪는 것입니다. 오늘 사람이 갈등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죄로 인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갈등에는 육체적 갈등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갈등은 육체적인 필요를 말합니다. 육체적인 갈등은 다시 말해서 먹지 못해서 배고픈 것을 말합니다. 물론 지금은 먹지 못해서 굶는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많이 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으로 경제 부흥을 이루어 잘살게 되었습니다. 이 육체적인 갈등은 돈만 있으면 해결됩니다.

또한 마음의 갈등이 있습니다. 마음의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옵니다. 육체적인 갈등은 해소됐는가 했더니 이제는 마음의 갈등이 생겨납니다. 마음의 갈등이 생기므로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키며,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 심해지면 이혼하고, 자살하며, 가출하는 일도 생깁니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말은 못하지만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습니다. 이 갈등은 물질을 가지고도 해결이 안됩니다. 명예와 부귀를 가지고도 안됩니다. 인간의 방법, 세상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3. 인간의 회복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습니까? 정신 수양을 하고, 교육을 받으면 됩니까? 수양을 해도 회복되지 않습니다. 교육을 받아도 안되고, 책망, 권고, 지도로도 안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해서 포기해야 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회복됩니다. 추한 인간이 아름답게 됩니다. 악한 사람이 선하게 됩니다. 거짓된 인간이 진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갈등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먼저는 하나님과 나와의 갈등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나와 나 자신과의 갈등이 해결됩니다. 또한 나와 다른 사람과의 갈등도 해결됩니다. 심지어는 안되던 사업도 회복이 됩니다. 병든 육체도 회복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을 때 이런 축복이 쏟아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는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이 의인으로, 저주받을 자가 사랑의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의 예수를 믿기만 하면 새로워 지게 됩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고후 5 : 17).

여러분! 이 땅에 참된 민주화를 기대하십니까? 가정의 화목을 원하십니까? 자신이 새로워 지시기 원하십니까? 상황과 환경이 변화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모든 것이 새로워 지게 됩니다.

오늘 '예수 사랑 큰잔치'에 정말 잘 오셨습니다. 오늘 잔치에 여러분을 초대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 잔치를 배설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새롭게 됩니다. 과거와는 상관없는 새 사람이 됩니다. 땅에 있으나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을 믿고 그 분에게 맡긴다면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