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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 하니-사도행전
1 : 6
세상은 갈수록 태산입니다. 산 넘어
산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점점 문제가 많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점차적으로 더 큰 난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난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를 보아도, 가정을
보아도 깊은 혼돈과 소용돌이 속에 빠져 들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얽히고 설켜 있는 실 타래 같아서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잘 모릅니다.
우리는 과연 오늘 우리의 가정 문제,
국가 문제, 개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해결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무너져 버린 사회 질서와
예의 범절, 황폐해진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 불황 속에
있는 경제, 방향 감각을 상실한 정치, 이성을 잃은 학생들과
노동자들, 마약과 환각제로 파멸을 자처하는 사람들, 과연
언제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까?
1. 저희가 모였을 때에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많은 환난을
당해 온 민족입니다. 이방 민족들로부터 수많은 침입을
받아 왔으며, 때로 국가가 멸망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로마의 속국으로 주권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관심은 언제 주권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침례 요한이 나타나 회개를 외치며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했습니다(마 3 : 2,8). 이것을
본 군중들은 요한을 이스라엘을 회복할 자로 여겨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요한은 이스라엘을 회복할 자는 자기가
아니라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마 3 : 11, 요 1 : 29).
요한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과 같이 회개를 촉구하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각색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을 본 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을 회복할 자로 생각하여
따르게 되었습니다(마 4 : 25). 그 중에 어떤 이들은 생업을
팽개치고 예수를 따른 자들도 있었습니다(마 4 : 17-22).
예수의 제자들 중 어떤 제자의 어머니는 예수께서 나라를
회복할 때 자기 아들에게 한 자리를 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이었습니다.
모여든 군중들은 나라를 회복할 예수님께서 무기력하게
죽어 가니 실망을 하게 됩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모여들었던 군중들과 추종하던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든 기대와 소망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죽으신 예수님께서 예언의 말씀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요
21 : 16, 행 1 : 6). 이 소식이 각 처에 전해지자 흩어졌던
군중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무엇인가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기대한 것입니까? 그것은 민족의 회복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군중들이 왜 모여드는
것입니까? 기대감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모이고, 노동자들이
모이며, 시민들이 모여드는 것은 무엇인가 기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가, 경제가, 사회 질서가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지난 달에 소련을 갔을 때 군데군데
군중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모여 있는가 보았더니
무엇을 구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점들이 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팔 물건이
부족한 것입니다. 물건을 사려고 몇 시간씩 기다리다가
물건이 없어서 상점문을 닫으면 그냥 돌아갑니다. 불평을
하거나 데모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큰 소리가 나고 싸움이 났을 것입니다. 물건이
부족하더라도 부족한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왜 부족하냐고
대들 것이 뻔합니다. 소련도 한두 번 그런 것이면 우리와
똑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늘 그래왔으니까 기대하고
왔다가 없어도 불평하거나 원망할 것 없이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왜 모여드는 것입니까?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우리는 언제 회복될 것입니까? (행
1 : 6)
2. 나라는 언제 회복되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통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미 남북 탁구 단일팀을 구성하여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습니다. 전 같았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는 축구도 단일팀을 구성해서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전에 비하면
남북이 매우 많이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깝고도
먼 것이 남북 관계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통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 민족이 회복될
것입니까?
소련의 땅은 참으로 비옥했습니다. 그런데
놀고 있는 땅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산주의입니다. 비옥한 땅이
많이 있어도 자기들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버려진 땅으로
그냥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 외에는 더 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일을 더 한다고 해서 먹을 것을 더 준다든지,
월급을 더 준다든지, 진급을 시켜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자기 것이 없으니까 일을 하지
않고 그 때문에 놀고 있는 땅이 많은 것입니다. 그리고
건축물을 보니까 그 규모가 굉장했습니다. 대단히 웅장하게
잘 지어졌더군요. 여러 가지 면을 볼 때 가능성이 많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소련은 개방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고르바초프가 개방 정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소련은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회복될
가능성이 오직 교회 안에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교회만이
오직 소련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지금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서로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다 보니까
혼란스럽고 무질서합니다. 과연 회복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
언제 회복되겠습니까? 그러나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행 1 : 7).
3. 가정은 언제 회복되겠습니까?
오늘 가정을 보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파멸 직전에 있습니다. 과연 회복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가정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는 일에
애를 씁니다. 돈이 있으면 되는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돈 때문에 살인이 나고, 가정에
파탄이 생기고,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며, 음란이 성행합니다.
돈 때문에 형제간에 싸움이 일어나고, 부부간의 애정이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돈이 회복을 가져다 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파괴시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무너진 가정 윤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신앙을 떠나서 양심을 회복하고 도덕과 윤리를 회복시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회복이 되질 않습니다. 물질 세계에
도덕과 윤리가 어디 있습니까? 물질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공동체 안에도 물질 때문에
양심과 도덕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 간에 물질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물질적인
것으로 시험이 들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신앙을 떠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든지 교회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아예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의 가정은 언제 회복되겠습니까?
4. 나는 언제 회복되겠습니까?
언제 내가 회복될 수 있습니까? 여기서
'나'라고 하는 것은 가정이 포함되고 국가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언제 나라가 회복되겠습니까?
이것은 나라 뿐만 아니라 언제 내가, 내 가정이, 내 이룻이
회복되겠습니까라는 의미가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8절). 나라가
회복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내게 임하여 내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루살렘도, 유다도, 사마리아도,
심지어는 땅 끝까지 회복되는 것입니다. 양심 회복도 중요하고,
윤리와 도덕 회복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 영이 회복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소련의 회복에 대한 기대에 있어서 설문
조사한 결과 레닌이 5퍼센트, 고르바초프가 20퍼센트,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다는 것이 59 퍼센트로 나왔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하겠다는 것이 과반수 이상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만이, 예수를 믿는 신앙만이 소련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복되기를 소원하십니까? 사업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까? 가정이 회복되고, 자녀 문제가
회복되며, 국제 문제가 회복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십니까?
무엇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되겠습니까?
정책을 새롭게 하고 사람을 바꾼다고 해서 되는 문제입니까?
영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국가의
문제가 해결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능력으로도 힘으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됩니다. 오직 성령이 모든
심령 속에 임하여 역사하시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먼저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업이 무너졌으면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받으면 다시 일어날 줄 믿습니다. 자녀가
학교에 떨어졌습니까? 실망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은혜받고 공부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영이 회복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공부요 사업인
것을 잊지 마시고 바랍니다.
그리고 영이 회복되었다면 계속해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회복되지 않으면 짜증이 납니다.
불평이 생기고 원망을 하게 됩니다. 쓸데없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충만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영을
날마다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롭고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제 회복될 수 있습니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바 성령을 반드시 주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증인이 됩니다. 내가 먼저 성령으로 회복되어야
모든 문제도 회복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리며 기도합시다.
은혜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기다립시다. 사모합시다.
그러면 회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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