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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한복음
19 : 28-30
지금 농촌은 목마르답니다. 지난 겨울에
눈과 비가 너무 적게 와서 논과 밭이 가물답니다. 그래서
농부들도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빨리 비가 와서 목마름이
해결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막은 항상
목마릅니다. 어쩌다 만나는 오아시스는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입니다.
1. 세상은 목마르다
수락산이 불붙게 되었습니다. 저희 양수리
수용관도 불붙게 되었습니다. 너무 목마르기 때문에 불만
당기면 신나게 타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땅이 목마릅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와 산업폐기물 그리고 갖가지
오물 등으로 인해서 땅은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배기 가스, 공장에서 뿜어나오는
연기, 가공 연료를 사용하므로 뿜어 나오는 온갖 가스로
인해서 자연도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모두 갈증이 났습니다.
오늘날 러시아 공화국이 목마릅니다.
갈증이 났습니다. 간신히 겨울을 지냈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난리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도 목마릅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와
같이 갈증이 나 있습니다.
2. 인간은 목마르다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 불사약을 찾았다더니
노루 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사발에 몇 십만
원씩 하는데 그 많은 돈을 주고 사서 마십니다. 왜 마시는
것입니까? 갈증이 나기 때문입니다. 갈증이 나니까 좋은
것이라고 하면 무조건 먹어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십니다. 만취가
되도록 마십니다. 왜 마십니까? 그것은 정신적인 갈증 때문에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 갈증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갈증이 납니다. 그래서 술을 먹고 반드시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요즘은 애들까지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국민학교 학생들이 공부하다 말고 산에 가서
'세상 살기가 괴롭다'면서 본드를 마시고 죽은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목마르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젊은 부부들이 이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세상을 얼마나 살았다고 그러는 것입니까?
모두가 목마르기 때문입니다. 애들이고 늙은이고할 것이
없이 인간은 목이 마릅니다.
3.자신도 목마르다
오늘 사람들은 갈증이 나기 때문에 해결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방황을 합니다. 여러분! 나 혼자만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열심히 뛰어다닙니다만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더불어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곧 자기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행하면 나도 불행한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찌
되든지 간에 나만 행복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국가가 불안하면 나도 불안합니다. 국가가 안정되면 나도
인정되고 번영합니다. 국가는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모두 갈증이 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국가가 목마르기 때문에 나도
목마른 것입니다. 국가가 어려우니까 우리도 어려운 것입니다.
국가가 불안하니까 가정도 불안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다시 말해서 갈증이 났습니다. 그는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목마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빌립보서 3 : 4 이하에 말하기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고
했습니다. 이런 바울이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갈증이 생겼습니다.
그 갈증은 어떤 갈증입니까? 로마서
9 : 1 이하에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그의 갈증은 믿지 않는 형제들에 대한 갈증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믿게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큰 근심이 있고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은 갈증을 느낀 것입니까?
왜 그렇게 목말라 한 것입니까? 로마서 9 : 6 이하에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 자기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의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
보니까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해서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이
중요함을 알았고, 형통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면서도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형제들을 바라보면서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에게 이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명자의 갈증입니다.
우리는 종종 '누가 예수 믿다가 시험들었대,
누가 예수 믿었더니 어려움만 당했대' 하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영적 갈증 곧 사명자의 갈증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 : 29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언제나 영적으로 목말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사명자의 갈증을 보고는 어리석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11 : 1에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1 : 2에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교회를 가도 마음에
들지 않고 저 교회를 가도 마음을 정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육적인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잘
인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관심을 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꼭 예수를
믿어야만 하고 믿도록 하겠다는 안타까움과 갈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4. 하나님도 목마르시다
하나님도 목마르십니까? 목마르시다면
그 목마름은 어떤 것입니까?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두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난 다음부터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모두 악했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람을 만들어 놓은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창세기 6 : 5, 6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갈증인 것입니다.
갈증이란 '애탄다'는 뜻이요 '잠을 못
이룬다'는 뜻입니다. 자식이 밤이 늦도록 들어오지 않으면
부모는 갈증이 납니다. 애가 타고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자식이 들어오면 혼을 내줍니다. 그러면 자식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모르고 신경질을 부립니다. 자식이
늦게 들어온 것을 생각하면 자식에게도 갈증이 있었겠지만
늦게 들어오는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에게는 더 큰 갈증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면
갈증이 나십니다. 애가 타고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다. 물론
인간이 목말라 하는 것을 모두 아시지만 그러면서도 죄
중에 있으면 마음 아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갈증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몸부림과 애탐은 인간을
살리시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고 십자가에 달리시게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 : 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9 : 10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게 되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이제 본문을 봅시다. 오늘 본문 28절
주님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주님의 목마름은 생리적인 목마름인
줄로 알았습니다. 사람이 피를 많이 흘리게 되면 갈증을
일으킵니다. 특히 군인들이 싸우다가 피를 흘리게 되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물을 찾습니다. 그때 물을 주면
죽습니다. 수혈을 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셨기
때문에 생리적인 갈증을 느끼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하실
때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드립니다. 만약 예수님의 갈증이
생리적인 갈증이셨다면 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시게 할 때
마셨으면 해결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갈증이 생리적이고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임을 말해 줍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에
대한 갈증인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갈증은 어떻게 해야됩니까?
그것은 예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누가복음 23 : 39 이하를 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에 한 강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비방하기를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다른 한
강도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 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회개한 이 강도가 주님의 갈증을 해결해
드린 것입니다. 주님의 갈증을 먼저 해결시켜 드렸더니
축복으로 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갈증을 먼저
해결해 드리면 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으로 인간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명예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돈이나 명예, 지식이나 권력 등은 일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갈증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시 42 : 1) 우리도 주의 은혜를 사모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에 갈급하면 우리의 갈증은 곧 해결될 줄 믿습니다.
특별히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목마르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가슴에 담고 먼저는 나 자신이 하나님께
합당한 자로 설 수 있도록 회개하며, 더 나아가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한 주간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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