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산소망을 주신 예수님

본문 |벧전1:3,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가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것이라 -베드로전서 1 : 3,4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날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압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삶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았다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3절).

소망은 기대라는 말입니다. 세상은 소망, 즉 기대가 있어야 살아갑니다. 이 기대가 있어야 발전이 있습니다. 소망이 없다면 사람이 살아갈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오늘 인내하고 절약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오늘 노력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은 내일이 있기 때문이요 이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룻배를 가지고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참고 인내한 결과 지금은 전동선을 가지고 고기잡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손으로 농사를 짓던 농부들도 언젠가는 농업의 과학화 내지 기계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결과 지금은 기계가 아니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기대, 곧 소망은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조금 전에 봉독해 드린 베드로전서 1 : 3이하의 말씀을 가지고 '산 소망을 주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세상은 절망이다

이 세상은 절망입니다. 정치를 보아도 절망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치난국을 맞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이 과도기를 슬기롭게 이끌어갈 민족적인 지도자를 기대하고 있으나 없는 것 같습니다. 지도자라고 한다면 백성들로부터 지지와 존경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의 앞날에 대해서 염려하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자연을 보아도 절망입니다. 우리가 안심하고 마셨던 물마저 이제는 마음대로 마실 수 없습니다. 어디서나 얻을 수 있던 물을 이제는 돈을 주고 사 먹는 형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각종 폐수와 오물 그리고 배기 가스 등으로 자연은 말할 수 없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모두 오염되어 가고 있어서 절망입니다.

우리 나라 경제를 볼 때도 절망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경제가 전보다는 많이 성장했습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오천불이나 된다고 합니다. 과거보다 경제가 성장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기업들이 모조리 무너지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얼마나 부도가 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큰 기대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세상은 절망입니다. 오래 전에 서울의 모 여자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희망 배우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 수위를 달리던 대상들이 정치인, 경제인, 의사, 학자들이었고 목사는 이발사 다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조사한 결과 목사가 수위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고 명예가 있는 사람과 결혼을 한 사람을 보니까 절망이더라는 것입니다. 돈이 있어서 행복할 줄 알았는데 돈 때문에 오히려 가정이 파괴되고 불행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그래도 목사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이 왜 이렇습니까? 그것은 세상은 절망이기 때문입니다.

2.세상은 불가능이다

세상은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혼을 합니까? 그리고 왜 자살을 합니까? 그것은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술만 먹으면 때리고 부수고 행패를 부립니다. 내일을 바라보며 참고 또 참습니다만 사람이 변화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해 봐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땀을 흘려 봐도 미래가 밝지 않습니다. 가능성이나마 있으면 더 참아 보겠는데, 가능성만 있으면 더 노력하겠는데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세상은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까? 첫째로 세상이 썩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썩었고, 마음이 썩었으며, 정신이 썩었고, 자연이 썩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썩었고 공기도 모두 썩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오염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너무 오염되어서 썩어 냄새가 납니다. 썩었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은 것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세상이 더럽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습니다. 거리를 보아도 더럽고, 사람 살아가는 것을 보아도 더럽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더럽습니다. 더러워지면 추해 보입니다. 자연은 쓰레기 때문에 더럽고, 사람은 정욕 때문에 더럽습니다.

셋째로 세상은 왜 가능성이 없습니까? 쇠해졌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습니다. 쇠해졌다는 것은 쇠약해졌다는 것이요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녹슬었다는 것입니다. 녹슨 것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음도 약해졌고 정신도 약해졌습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한심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건강한 것 같은데 속으로는 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라의 장래가 아이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볼 때 내일에 대한 가능성이 없다면 큰 문제인 것입니다.

3. 하늘에 산 소망을 갖자

옷이 더러워졌으면 세탁하면 됩니다. 세탁하면 다시 깨끗해집니다. 요즘은 세탁하는 기술이 발달해서 아무리 더러워졌어도 드라이를 하면 깨끗해집니다. 또한 썩었으면 도려내면 됩니다. 더 이상 썩지 않도록 미리 예방을 하면 됩니다. 계속해서 썩어 들어가지 않도록 하면 됩니다. 또한 쇠해졌어도 연단하고 훈련하면 됩니다. 그러면 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녹슬은 것은 갈아서 윤이 나도록 하면 됩니다.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이 썩었다고 할 때 썩은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썩었어도 바로 썩었으면 거름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유익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 : 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죽는다는 말은 썩는다는 말입니다. 썩어도 바로 썩으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실 바로 썩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럽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러운 것을 알면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러우면서도 더러운 줄을 모르고 깨끗한 체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3 : 25,26에"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7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고 했습니다. 속은 더러운데 겉으로만 깨끗한 체하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속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썩었어도, 세상이 더러워졌어도, 아니 쇠해졌어도 소망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 : 8 이하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더러운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면 그 문제는 해결됩니다. 깨끗하게 됩니다. 바로 세상을 깨끗케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 : 39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죽어 장사된지 나흘이 되어 시체가 썩어 냄새나는 곳에 찾아가셔서 그를 살리신 말씀입니다. 썩어 냄새나는 줄 아시면서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더럽고 추악하며 썩어 냄새나는 세상을 깨끗케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셔서 썩은 것은 썩지 않도록 하셨고, 더러운 것은 깨끗하게 하셨으며, 쇠한 것은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히 더럽지 않고 썩지 않으며 쇠하지 않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4절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이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소망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산 소망'이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은 싹이 없습니다. 싹은 씨앗이요 생명입니다. 씨앗이 없으니까 싹이 없고,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싹수가 없습니다. 싹수가 없다는 것은 싹이 없다는 것이고,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을 안 듣고 까부는 사람을 '싹수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왜 싹수가 없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 있으면 싹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 : 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들어가야 싹수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 : 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를 나왔다고 해서 싹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싹수가 있습니까? 씨가 있어야 싹이 납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로 싹이 있게 합니까? 무엇이 우리로 싹수 있게 합니까? 그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거듭나게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주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거듭나면 산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적으로 부활한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부활한 우리는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시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배를 부활시켜야 하겠습니다. 요즘 성도들은 주일 낮예배만 드리면 다 된 줄로 압니다. 저녁예배는 자기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각종 예배를 부활시킵시다. 저녁예배, 새벽예배, 구역예배를 부활시킵시다. 특별히 가정예배를 부활시킵시다.

둘째로 기도를 부활시켜야 하겠습니다. 요즘 교회들마다 기도의 불이 꺼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목회자들도 자고 있습니다. 이제 좀 살 만하고 등이 따뜻하니까 자빠져 잠만 자고 있습니다. 다시 일어나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잠만 자던 제자들에게 '이젠 자라'고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오기 전에 일어나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철야기도를 부활시키고, 새벽기도를 부활시킵시다.

셋째로 찬송을 부활시켜야 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찬송을 불러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입가에 찬송이 떠나지 않도록 합시다. 가정에 찬송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합시다.

넷째로 감사를 부활시켜야 하겠습니다. 많은 축복을 받았으면서도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기억하여 늘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사업을 지켜 주시고, 건강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부활시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