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금은 만물의마지막인가?

본문 |벧전4:7-1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베드로전서 4 : 7-11

오늘 우리 사회는 1992년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시한부 재림설로 떠들석합니다. 특별히 페르시아만 사태 이후 이 재림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은 끝이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공부하는 것을 그만두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직장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일하는 것을 멈추는 일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이 만물의 마지막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말에 대해서 나타나는 현상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교훈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베드로전서 4 : 7-11의 말씀을 중심해서 "지금은 만물의 마지막인가?"라는 제목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7절을 봅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먼저는 정신을 차리라고 교훈하고 있고, 둘째는 근신하라고 하시며, 셋째는 기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1. 정신을 차리자

오늘날 사람들은 정신을 다 빼앗겼습니다. 정치가는 정치에, 사업가는 사업에, 학생은 공부하는 일에, 가정을 가진 사람은 가정에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쓸데없는 곳에 정신을 쏟고 있습니다. 세상에 정신을 쏟고 있고, 향락과 사치와 이성에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파탄되고, 사업이 무너지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할 줄 압니다.

우리는 가끔 '미쳤다'는 말을 듣습니다. 세상에서 '미쳤다'라는 말은 정신이 흩어진 것을 말합니다. 정신이 집중된 것이 아니라 혼돈된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고 종종 '미쳤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울도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들었을 때에 자기가 미친 것은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 대하여 미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자랑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 : 13에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미쳐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 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정신이 팔려 있는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학생이 공부하는 일에 미치고, 사업하는 사람이 사업에 미치고, 정치하는 사람이 정치에 미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학생이 전자오락에 미친다든지, 사업하는 사람이 호색하는 일에 미친다든지, 정치하는 사람이 돈에 미친다든지 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의 정신은 온전한 데 미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허망하고 허탄한 데 미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할 줄 믿습니다.

지금 페르시아만 사태로 위기를 느낀 유대인들이 세계 각 처에서 이스라엘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오직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몰려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살겠다고 도망갈 상황인데 자기 생명보다도 국가의 운명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들의 정신력은 대단합니다. 이 정신력은 조상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정신을 차리라고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기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력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근신하자

정신을 차린 다음에는 근신해야 합니다. 근신이란 말은 '떠나라' '버려라'는 뜻입니다. 또한 근신이라는 말은 절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정신을 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신하는 것, 절제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멸망의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가 마치 우는 사자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5 : 8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깨어라'라는 말은 '자기 위치를 찾아라','자기 범위를 정하라'는 것입니다. 근신은 곧 깨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근신은 어떤 것을 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곳에 있고 싶어도 있지 않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포로 된 상태에서 바벨론 왕이 먹는 진미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큰 영광입니다. 그것도 포로 되어 온 자가 왕의 자리에 함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먹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 마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절제했던 것입니다. 그의 절제는 곧 죽음을 가져올 수도 있었습니다. 왕의 명령을 거절한다는 것은 곧 사형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1 : 8을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을 수도 있었지만 먹지 않았습니다. 먹지 않은 이유는 왕의 진미를 먹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워서도 성은이 망극해서도 아닙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절제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근신의 생활을 해야 할 줄 믿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면 절제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라면 포기합시다. 이것이 근신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말세를 사는 우리는 근신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근신의 생활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틈만 나면 주의 일에 힘씁니다. 다른 사람이 놀거나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것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근신하는 것입니다. 매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기회가 되는 대로, 시간이 있는 대로 주의 일에 힘쓸 때 근신하게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근신하는 것이라고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 : 8에 '근신하라 깨어있으라'고 해 놓고, 4 : 10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기를 깨워서 믿음을 지키고 주의 재림이 임박한 것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근신해야 할 것입니다.

3. 기도하자

기도는 무기입니다. 무기는 적과 싸울 때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도라는 무기는 내게서 상대방을 찌르고 괴롭히는 것을 맡아 주는 무기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비난하며 조롱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기보다는 오히려 저주하고 비판하며 남의 허물을 드러내기를 잘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실족시키고, 시험에 들게 하며,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도는 바로 자기에게서 나가는 이러한 무거운 폭탄들을 막아 주고 제거하는 좋은 무기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혹시 어떤 사람을 까닭 없이 미워하거나 질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별 이해관계도 없는데 비난하고 조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누구를 저주하거나 심판할 권리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고 우리는 다만 기도할 책임만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 : 8에 "무엇보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고, 9절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기도의 결과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기도하면 서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되 먼저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먼저 대접하게 됩니다. 여러분! 기도는 우리에게서 나가는 무서운 독소를 제거하는 좋은 무기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기도는 상대방으로부터 오는 고난과 핍박과 환난을 막아주는 방어용 무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욕하고 비방할 때 참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을 보면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어떤 어려움과 고난과 핍박이 닥쳐와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외부로부터 오는 시험을 막아 주는 방어용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4 : 12 이하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베드로가 권면했습니다. 베드로는 시험이 우리에게 올 때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기쁘게 여기고 이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갖 시험과 고난을 이겨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기도할 때 이기게 됩니다. 기도하면 영광의 영이 우리로 하여금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에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4. 지금은 만물의 마지막인가

초대교회 당시 제자들도 예수님께 이 질문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 : 6에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고 물으니, 이때 주께서 대답하시기를 7절에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 : 36에서도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종말의 시기와 때를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계시할 계시의 내용을 남겨 놓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요한계시록으로 끝이 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 것이다 라고 시기와 때를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 : 14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이 지구 상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부족이 천 이백 부족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혹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마지막이 오고 있습니다. 인간이 그 마지막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마약과 대마초와 환각제를 복용하므로 인간 스스로가 자기의 마지막을 부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절제한 성관계를 통해서 인간은 스스로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가정도 다른 이성에 빠져 들어 마지막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세상도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을 자기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을 말할 때 항상 역사적인 종말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인의 종말입니다. 즉 개인의 마지막입니다. 역사적인 마지막은 믿으면서, 그 마지막을 준비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이 미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역사적인 종말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종말을 반드시 맞습니다. 히브리서 9 : 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그 다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27절). 그러므로 개인적인 종말을 잘 맞이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는 마지막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 마지막인 줄로 알지만 믿는 우리에게는 마지막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삶이 예비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삶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 사업이 망하셨습니까? 사업이 망했다고 해서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업이 망했어도 예수 믿는 자에게는 마지막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새로운 출발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혹 대학에 떨어졌습니까? 대학에 떨어졌어도 마지막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깨닫고 열심히 노력하면 새로운 역사의 처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새로운 시작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실망과 좌절 속에 있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사람들은 지금이 세상의 마지막인 줄로 알고 염려하고 있는데, 우리는 저들에게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이 마지막이 아님을 선포해야 합니다. 다만 주의 재림이 임박한 것을 징조를 통해서 깨닫고,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진리에 이르게 하고 구원받도록 하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됩시다.

일어납시다. 근신합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