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증인은 증거를 갖자

본문 |행26:19-23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느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사도행전 26 : 19-23

오늘날의 증인이 필요한 때입니다. 직장에 들어가려고 해도 보증인이 필요하고, 학교에 들어가려 해도 보증인이 필요합니다. 물론 법정에 선 사람에게도 증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보증을 서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증인이 되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과연 나를 위해서 보증을 서 줄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가까운 친척도 보증을 서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가정은 형제간에도 보증을 서주지 않습니다. 보증을 서 주었다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많이 때문에 잘 서 주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위해 증인될 자가 필요합니다.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인인 우리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는 의의 옷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보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중에는 보증을 서 줄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 : 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나의 증인이 되어 줄 수 있습니까?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로마서 5 : 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9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서 우리가 죄사함을 얻었고 의롭다 여겨 주시는 은혜를 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증인이 되십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의 증인이십니다. 에베소서 1 : 13,14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성령께서 우리의 보증이 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 : 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증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거를 가진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증인은 증인되자

'증인은 증인되자'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증인은 증인되자'는 말은 당연한 것입니다. '증인이면 되지 더 이상 증인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라고 질문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부모가 곁길로 가고 말썽을 잘 피우는 자식에게 '제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자식이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기 때문에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라 하더라도 자식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다운 자식이 되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증인은 증인되자'라는 말도 이와 같습니다. 증인은 증인인데 증인다운 증인이 아니기 때문에 참된 증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증인다운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증인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렵거나 무섭다고 잘못 말하면 위증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위증죄에 걸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 : 22-24에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메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증인인 것입니다. 환난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이 앞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도 달려갑니다. 사명을 끝까지 감당합니다. 이것이 참된 증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생명 뿐만 아니라 현실에 있어서 물질과 시간까지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아니라 교파의 증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교파를 너무 따집니다. 자기가 속한 교파가 최고요 진짜라는 것입니다. 다른 교파는 모두 이단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교파가 아니면 모두 배척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인간의 증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의 사람을 선전하고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상품의 증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파의 증인도 아니요, 인간의 증인도 아니요, 상품의 증인도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증인은 자기 증거를 갖자

증인은 자기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간증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베스도 총독에게 고소되어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6 : 1을 보면, 이런 위기에서 불신자인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자기를 변명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26 : 2 이하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며, 그 주님을 만난 자기 체험을 간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그립바 왕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도록 권고했습니다. 바울은 생명을 다해 증거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 기회를 자기를 위한 기회로 삼지않고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증거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증인에게는 자기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증거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의 증거입니다. 예수 믿으면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이전과는 달라집니다. 얼굴 표정도 달라지고, 마음의 자세와 생명이 달라지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육적인 증거입니다.

사도행전 3 : 1 이하를 보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의 역사로 일어나 걸었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저들을 통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어떻게 일어나 걸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에게 외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 육체의 증거는 불신자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두 번째는 마음의 증거가 있습니다 .육체의 증거는 즉시 나타나지만 마음의 증거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납니다. 이 마음의 증거는 성도와의 관계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세 번째는 영의 증거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에게 이런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3.가정의 증거를 갖자

가정의 증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외적인 증거가 있는데, 그 외적인 증거는 예수 믿고 변화된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가까운 이웃이나 친척들이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활의 변화를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아무개네 집은 예수를 믿더니 아이들도 착해졌고 모든 식구들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런 생활의 변화가 외적인 증거인 것입니다. 생활의 변화라고 하면 집이 커지고, 자가용이 생기고, 물질을 많이 축적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한다면 그 믿음은 수준 낮은 믿음입니다. 수준있는 참 신앙 곧 참된 생활의 변화는 가난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고 화평합니다. 이것이 참 증거를 가진 가정의 모습입니다. 이런 가정은 영적으로 십자가의 증거를 가진 가정입니다. 십자가의 증거가 있어야 생활의 변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내적 증거입니다. 내적 증거는 그 가족 식구들이 볼 때에 달라진 것을 말합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잘하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으로 대합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극진히 공경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친자식처럼 사랑합니다. 전에는 찾아볼 수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이렇게 달라진 것입니다. 이것이 내적인 증거입니다. 이런 가정, 이런 사람은 교회 안에서도 열심히 충성합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합니다.

그런데 신앙 가운데도 '밀물-썰물 신앙'이 있습니다.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신앙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열심히 하고 기분이 나쁘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은혜받은 것 같으면 충성하고 좀 싸늘한 것 같으면 자빠져 잠만 잡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은 교회에 들어가 은혜를 받다가도 교회가 조금만 마음에 안들면 나갑니다. 그래서 일정하게 출석하는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들쑥날쑥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밀물-썰물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내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자신은 보지 못하고 남의 문제만 봅니다. 그래서 비판하고 판단하고 심지어는 욕을 합니다. 우리는 증거를 가져야 하겠고, 가정에도 증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 가정은 증거가 있었습니다. 이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에 힘쓰는 가정이었습니다. 이 가정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고넬료 집에는 친척들과 이웃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베드로를 기다립니다.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불러오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도 그들은 돌아가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이것은 고넬료의 가정에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4.교회의 증거를 갖자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교훈할 때  사데 교회를 자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3 : 2에 보면 '사데 교회는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했습니다. 15절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덥지도 차지도 않은 신앙을 가졌다고 책망받았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3 : 8에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교회였으므로 칭찬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들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칭찬받는 교회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교회가 증거를 갖되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은 증거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1 : 3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이루는 증거있는 교회였습니다. 빌립보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이 충만한 교회로 칭찬받았고, 골로새 교회도 증거있는 교회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교회들도 역사를 이루는 믿음,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랑, 소망 가운데 인내하는 산 증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라고는 하지만 이단의 교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침례교 안에도 이단이 들어와 있습니다. 복음침례교, 남침례교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침례교는 복음적인 교단으로 소문이 나있는데, 잘못된 교리를 가진 이단들이 침례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들어옴으로 많은 사람을 유혹하고 혼란케 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침례교라고 해서 안심하고 갔다가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렇듯 교회를 잘못 선택하면 이단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적인 교회, 증거가 있는 교회에 뿌리를 내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벌써 2월을 맞이했습니다. 시간은 유수같이 빠릅니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말세임은 분명합니다. 말세를 사는 우리는 힘써 증인된 삶을 삽시다. 앞으로 남은 나의 개인적인 삶도, 가정도,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증거를 나타내 보여야 할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어떤 환경이 전개될 지 모르지만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는 증인된 삶을 삽시다.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