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잘살려면 절제하자

본문 |갈5:3-26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라디아서 5 : 23-26

조금 전에 읽어 드린 오늘 본문은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2절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마지막 열매가 절제입니다.

절제라는 말은 '절약한다'는 것이요, '자제한다'는 것이요, '자신을 억압하고 자신을 억누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나쁜 의미로 자신을 억압하고 억누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못된 것, 욕심이나 세상으로 향하는 헛된 생각을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이 절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금년에 잘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절제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절제하면 당연히 잘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절제해야 합니까?

1. 육체의 일을 절제하자

요즈음 사람들의 몸이 많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육체를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파괴되는 것은 많이 먹어서가 아닙니다. 일을 많이 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사람이 일하다가 피곤하여 쓰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휴식을 취하면 됩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사실 일을 하면 육체가 파괴되기 보다는 오히려 건강하게 됩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육체의 일이란 이런 뜻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 : 19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육체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육체의 일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적 문란과 쾌락을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절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이 음행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시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음란과 호색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학생들까지도 이 육체의 일로 몸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가정을 가지고 있는 유부녀, 유부남도 이 일로 자신의 육체를 무너뜨리고 있고, 더 나아가 가정까지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손실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벌어서 이 일에 모두 써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망가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육체가 망가지는 것은 자기가 행한 일의 결과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애매한 다른 사람까지 피해를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를 썩게 하고 가정을 타락하게 하는 것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책을 보아도, 잡지나 신문을 보아도, 음악과 영화를 비롯한 예술세계를 보아도 순전히 음란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는 이런 문화가 비디오를 통해서 가정에까지 들어와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는 이 육체의 일을 절제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절제할 수 있습니까? 사실 육체의 욕구나 욕심을 절제한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육체의 욕구 가운데 물욕과 정욕 음욕 그리고 식욕이 있습니다. 이것을 절제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절제할 수 있을까요? 절제할 수 있습니다. 2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통해서 육체의 정욕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일을 절제해야 할 줄 믿습니다.

2. 마음을 절제하자

우리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며 내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합니다. 또한 마음에 있는 그것을 그대로 쏟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는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입으로 쏟아버리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심해야 할 줄 압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합니까? 우리가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마귀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자꾸 '자유하라'고 유혹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마음이 판단하고 결정한 대로 하라고 충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십자가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라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참았듯이 우리도 참으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 : 19에 보면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나를 절제하게 하고 자제하게 하지만 마귀는 자꾸 나를 흥분시킵니다. 우리는 마음을 절제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일은 무엇입니까? 마음의 일은 갈라디아서 5 : 20에 기록된대로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절제해야 하는데 이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즉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면 살인하게 되고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절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절제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서 2 : 5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 " 16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의 모든 것을 비운 마음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마음은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한 마음입니다. 이 예수의 마음을 우리가 가질 때 분한 마음,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 분냄과 당짓는 감정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절제하되 기쁨도 절제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 주변에 슬퍼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웃음도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 이웃에 고통당하여 괴로워하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 공동체 의식은 예수의 마음을 가진 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마음을 절제합시다. 세상으로 향하는 마음을 절제합시다. 어떤 특정한 인간에게 마음을 절제하기 않고 쏟으면 그 사람을 통해서 만족할 줄 아는데 오히려 실망이 옵니다. 사업과 가정에 마음을 쏟아도 그 마음이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사실 세상에 마음을 다 쏟으면 만족을 얻을 것 같지만 공허한 것 뿐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니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어떤 찬송가 가사 가운데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볼 때 나는 만족하였네"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쏟으면 공허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만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쏟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영을 절제하자

영적인 절제는 예수 믿으면서도 이단과 원수의 술수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상 앞에 절을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서 이 사람에게 가서 기도받고 저 사람에게 가서 안수받는 일을 합니다. 이것을 절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절제는 갈라디아서 5 : 20에 있는 "우상숭배와 술수와 분리함과 이단"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단은 분리시켜 놓는 일을 합니다. 영은 선하지만 육은 악하다고 분리시켜 놓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이 영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영만 구원받기 때문에 악한 육체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시대가 말세이다 보니 악한 영들이 더 판을 치고 있습니다. 복음을 가장한 이단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악한 영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은혜가 있는 장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또한 복음의 내용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4. 왜 절제해야 하는가

우리는 은혜받기 전에는 많이 낭비했습니다. 물질도 낭비했습니다. 시간도 낭비했습니다. 정력도 낭비했습니다. 육체도 낭비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더 더욱 낭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받고 나면 그동안 낭비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낭비는 쓰지 않을 것에 쓰는것 을 말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엉뚱한 곳에 썼습니다. 정작 써야 할 곳에 쓰지 않고 쓸데없는 곳에 써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에는 인색하고 자기를 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물쓰듯이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알고 은혜받고 나서는 후회합니다.

우리는 절제해야 합니다. 왜 절제해야 합니까? 그동안 낭비했으므로 절제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절제해야 합니까? 부모들은 자녀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절제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쓸 일도 많지만 먹는 것 다 먹지 않고 입을 것 다 입지 않고 저축을 합니다. 자기는 고생을 하더라고 자식들만큼은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부모님들은 고생을 해 보셨기 때문에 고생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가난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아십니다. 물질이 전부는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살아가는데 불편하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래서 열심히 절약하고 절제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노후 대책을 위해서도 절제합니다. 젊어서는 고생을 할 지라도 나이들어서는 편히 살자는 것입니다. 자식을 믿었다가 결혼을 잘못해서 부모를 모시려고 하지 않으면 늙은 고아가 되고 맙니다. 특별히 요즘 젊은이들은 시부모를 모시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노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절제하고 절약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절제합니다. 셋방살이가 너무 고달프고 힘드니까 힘이 들고 어렵더라도 집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런 절제도 좋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시간 낭비하는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습니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격언은 시간의 중요성을 잘 말해 줍니다. 우리는 시간을 절제하되 주님을 위해서 절제해야 합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바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 때문에 바쁜 것 보다는 쓸데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일에 바쁘다는 것입니다. 친구 만나는 시간, 차 마시는 시간, 쇼핑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이런 시간을 줄이고 그 남은 시간을 주님의 일에 바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즈음 성도들에게 전화 심방을 해 보면 낮에는 보통 집에 없습니다. 무슨 일로 바쁜지 모르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주를 위해 일하고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5. 왜 절제해야 하는가? 시간이 단축되었으므로 절제하자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종말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수명도 단축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생이, 우리의 건강이, 우리의 생명이 영원한 것인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계속해서 단축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절제해야 합니다.

시대가 단축되어진 이 때에 우리는 어떻게 절제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7 : 29-31을 보면,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은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의 행적은 다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요즈음 시중은 시한부 종말론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심지어는 믿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혼돈을 가져왔습니다. 사회가 매우 시끄럽습니다. 가출하는 학생이 생기고, 직장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시간이 단축된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매우 임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때와 기한은 아버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행 1 : 9).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절제해야 하겠습니다. 깨어 기도하고 근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즈음 페르시아만 전쟁으로 인해서 10부제 자동차 운행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하는 것입니다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항상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할 줄 압니다. 없을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있을 때는 없을 때를 생각하면서 절약하고 절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온 국민들이 슬기를 모아 난국을 타개해야 할 때임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먼저 절제하고 절약해야 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