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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0 : 7-11
오늘날 사람들이 세상을 표현하되 '씁쓸한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해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쓴맛을
많이 경험합니다. 언제나 단맛만 맛볼 수 없습니다.
오늘 전세계 가운데 쓴맛을 본 나라가
소련입니다. 소련은 삼 일 동안 쓴맛을 경험했습니다. 쿠테타를
일으킨 여덟 명은 처음에 단맛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들의 마지막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태풍으로 인해서 우리 이웃들이
쓴맛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원치 않는 쓴맛을 본 것입니다.
왜 이렇게 쓴맛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세상은 씁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봅시다.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배에는 쓰나 입에는 달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을 통해서 "쓴 것이 약이 된다"는
제목으로 이 아침에 피차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병든 것을 치료받자
이 세상은 모두 병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병들었습니다. 자연의 짐승도, 인간도
병들었습니다.
인간의 병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육체의 병이 있습니다. 이 육체의 병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곁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부분이든 고장이 꼭 나 있습니다. 보청기를
낀 것이나 안경을 쓴 것 모두 병입니다. 이들도 지체 부자유자입니다.
겉으로는 온전한 것 같은데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늙어서
죽는 사람을 노환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모두 병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육체적인 병이 있습니다.
또한 마음의 병이 있습니다. 사실 육체의
병보다도 이 마음의 병이 더 무섭습니다. 마음의 병이 들면
이성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고, 남편이
아내를 몰라봅니다. 형제간에 싸움이 생기는 것도 깊이
파고 들어가면 마음의 병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도덕적인 타락이 극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모두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영적인 병이 있습니다.
이 영적인 병은 마음의 병보다도 더 무섭습니다. 이 영적인
병은 모든 병의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이
병들면 마음이 병들고, 더 나아가서 육체까지 병들게 됩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병들면 원망하게 됩니다. 불평하고 짜증을
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영적인 병이 들어도 큰 문제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었다고 하더라도 영적으로 병들면 신앙을
다 팔아먹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기쁨도, 감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 농촌에는 곡식이 무르익어 가는데
벼 멸구가 극성을 부린다고 합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었다고
하더라도 멸구떼가 극성을 부리면 농사는 망치고 맙니다.
멸구를 잡아야 합니다. 멸구를 잡아야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병들었으면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병들면 죽습니다.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적인 건강 상태만 진단하지 말고 영적인
건강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종합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18 : 8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씀이나, 고린도후서 13 : 5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는
말씀이나, 마태복음 7 : 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말씀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병들어 버리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6
: 4 이하에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병든 것을
보고 탄식했습니다. 이사야 1 : 4이하에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스스로 멀쩡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병든 것을 모르고 스스로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멀쩡하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자기 진단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기 진단을 하되 조기 진단이 필요합니다.
때가 늦으면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병든 채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세를 사는 성도는 영적인
병을 치료받아야 합니다. 치료받아야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치료할 때 쓰는 약은 씁니다. 쓰지만 살리게 합니다.
쓰더라도 살기 위해서는 복용을 해야 합니다.
2. 쓰게 먹으면 병이 된다
"양약은 입에 쓰나 몸에 이롭고
충고는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 이롭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몸을 위한 약이나 행동을 위한 약은 쓰다는
것입니다. 육신을 위한 약은 씁니다. 충고도 듣기에는 씁니다.
여기서 쓰다는 것은 귀에 거슬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쓴것을 받아 먹으면 약이 됩니다. 반대로 쓰다고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쓴 것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쓴
것을 달게 먹을 때 몸에 약이 됩니다.
영적인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양식도 쓰지만 먹으면 약이 됩니다. 영적인 양식이 왜 씁니까?
영적인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지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쓴 것입니다. 우리가 죄라고
할 때 행동적인 죄를 많이 생각합니다. 살인하고, 도적질하고,
간음하는 죄를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죄에 대해서 양심있는
사람은 가책을 느낍니다. 디모데전서 4 : 2에 의하면 화인
맞은 양심은 가책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죄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5장에 의하면
악한 생각 자체가 죄라고 말씀하고 있고, 로마서 3 : 23에
의하면 누구나 다 죄인이라고 하면서 회개하라고 하니 그
말씀이 얼마나 쓰겠습니까? 그뿐입니까? 십일조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일 성수 해야 한다고 합니다. 기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씁니까? 쓰더라도 받아들이면 큰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이 축복 될
수가 없습니다. 성경 가운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고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쓰더라도
달게 받아들였던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쓰게만 받아들여서 교회에 나왔다가 다
도망갑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도 적응할 수 없습니다.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위한 약이나 영혼을
위한 약이 써도 달게 먹어야 합니다. 충고가 귀에 거슬리지만
받아들일 때 자기를 유익하게 하고, 약이 몸에 쓰지만 먹고
소화시킬 때 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쓰지만 달게
먹으면 자기 영혼을 살릴 줄 믿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지개는 언약, 곧 약속을 말합니다. 시편 84 : 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라고 했습니다. 해는 하나님의 권세를
말합니다. 그리고 불기둥은 심판을 말합니다. 2절에 보면
권세 있는 천사가 책을 들고 바다와 땅을 밟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위엄을 의미합니다. 7절에 이 천사가 말하기를 "지체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지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비밀이 지체되지 않고 알려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전세계에 확산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소련은 완전히 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공산국가들이 문을 열고 있습니다.
이 공산국가들에게 언제 복음의 문이 열릴것인가에 대한
것은 비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비밀을 지체하지 않고 열어
보이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환난이 지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앞장 9 : 13이하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여섯째 천사가 나팔불 때 임하는
심판에 대한 것입니다. 13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두빛과 유황과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큰 환난이 있겠다는 것인데 이 환난을 지체하지 않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땅에 임하는 것이 지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그 다음 장인 11 : 15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지체되지
않을 것이니 천사가 가지고 있는 책을 가져다가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 책을 먹으면 입에는 달지만 배에서는 쓸 것입니다.
그래도 먹어야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3.달게 먹으면 약이 된다
우리에게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든지 달게 들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일으키면 약이 되지 못합니다.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생명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일지라도 잘못 있으면 전에
먹은 양분까지 빼앗기게 되지만 진수성찬이 아니더라도
잘 먹고 잘 소화시키면 양분이 되어 건강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소화시킬 때 양식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시편 119 :103에 "주의 말씀이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답니까?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의 말씀은 나를 인도하고 나를 지켜주기 때문에
단 것입니다. 그리고 50절에 "이 말씀은 나의 곤난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나를 살리시기 때문에 단 것입니다.
시편 19 : 7 이하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든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롭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기"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그 말씀이 실제로 쓴 것은 사실입니다. 말씀대로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소화시키면 그 말씀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현실에
나가면 씁니다. 이 현실이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단맛을
맛보면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말씀을 달게 먹어야 할 줄 믿습니다.
쓴 하나님의 말씀을 왜 먹어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환난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달게 먹으면 환난도 이기고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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