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시나무의 불을 보자

본문 |행7:29-33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나 주의 소리 있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사도행전 7 : 29-33

식물 가운데 가시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카시아 나무와 탱자나무 그리고 선인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동물 가운데는 고슴도치가 가시가 있습니다. 가시가 있되 가시 중에도 큰 가시를 가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황소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의 고기들은 거의 가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런 가시가 아닙니다. 사람들을 찌르는 가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가시를 보자

가시가 무엇입니까? 가시는 찌르는 것입니다. 또한 가시는 아픔을 주어 괴롭히고 상처를 내게 합니다. 가시가 계속해서 찌르면 견디기가 어렵고 살 맛이 나지 않습니다. 가시는 이렇게 상처를 주고 괴로움을 줍니다.

그러면 이 가시가 언제부터 생겨났습니까 본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이 가시를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1장속에는 가시가 있지 않습니다. 가시는 인간의 죄의 결과로 생겨난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의 결과로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를 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시는 하나님의 창조 작품이 아니라 범죄한 인간 자신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의 타락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17절과 18절을 보면, 인간이 타락한 결과로 하나님께 말씀하시기를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 때문에 얼마나 찔림을 당하고 상처를 받습니까? 가정에서 남편에게 찔리고, 직장에서 상사에게 찔리며, 사회 어디서든지 서로 찌르고 찔림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가시가 많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가시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육체의 가시입니다. 육체의 가시는 질병을 말합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육체를 찌르기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통증으로 괴로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서 의술이 생겨났고, 의사가 존재하며, 갖가지 약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또한 육체의 가시는 가난입니다. 가난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당합니까? 실제로 사람이 먹지 못하면 속이 쓰리고 매우 아픕니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가시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마음의 가시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난도 아니고 질병도 아닙니다. 이것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식이 어그러진 길로 가므로 부모의 마음을 찌르고, 부부간에도 다른 사람에게 한눈을 팔므로 마음에 고통을 주는 것이 마음의 가시입니다. 오늘 이 가시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다 참다 못해서 이혼하게 되고, 더 심각한 사람은 자살까지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영의 가시가 있습니다. 영의 가시는 죄를 말합니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 중에 가장 큰 것이 죄로 인해서 당하는 고통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망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 : 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가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당 안에도 가시가 있고, 학교 안에도 가시가 있으며, 교회 안에도 가시가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면 가시가 있습니다. 잠언 15 : 19에는 게으른 것이 가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가시든 밖에 있는 가시든 가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 가시나무의 불을 보자

모세는 애굽인을 쳐죽임으로 40년 동안의 애굽 궁중 생활을 마치고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도망하여 시내산에 이르러 머물게 되었고, 거기서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과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그가 장인의 양무리를 치던 중 하루는 호렙산 근처에 이르렀을 때 가시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은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불 같으면 그 주변에 불이 옮겨 붙어야 하는데, 그 불은 다른 곳으로 확산되지 않고 그 가시나무에만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불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불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불에는 몇 가지의 불이 있습니다. 첫째로 세상의 불이 있습니다. 세상의 불은 무엇입니까? 지금 세상은 음란의 불이 붙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향락의 불이 붙었고, 사치의 불이 붙었습니다. 춤추고 먹고 마시는 불이 얼마나 붙었는지 사회가 꼴이 아닙니다. 이 불이 얼마나 붙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이 불 때문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장기전이 예상되었던 페르시아만 전쟁이 예상과는 달리 일찍 끝났습니다. 우리는 전쟁이 끝나므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지금 중동 지역에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후세인이 쿠웨이트에서 군대를 철수하면서 유전에다가 불을 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쿠웨이트 유전이 불타고 있는데, 그 불을 끄려면 적어도 이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쉽게 끌 수 없는 불이지만 언젠가는 꺼집니다.

그러나 끌 수 없는 불이 있습니다. 세상의 죄악의 불입니다. 결국 그 불로 인해서 멸망하게 되고, 유황불이 타고 있는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죄악의 불, 멸망의 불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시나무의 불을 보고 있는 모세에게 물었습니다. "모세야 무엇을 보고 있느냐" 그때 모세는 불을 보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가시는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가족이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에 갔을 때는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가시가 없었기 때문에 그 곳을 떠나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타났을 때부터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억압하고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의 그 이후에는 애굽의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고 찌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가시가 찌르는 데서 백성들이 살고자 몸부림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세상은 가시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말씀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 : 24)"고 탄식했고, 고린도후서 5 : 2에서도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탄식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세상의 가시에 찔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탄식의 불만 붙었다면 아마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불이 붙었기에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불붙은 사람입니다. 그는 불붙은 자기의 심정을 고린도후서 5 : 8에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도 세상의 가시에 찔렸지만 하나님께 대한 불이 붙었으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에는 가시가 많습니다. 거기다가 그 가시에 불이 붙었습니다. 불이 붙었을 때 혼자 살아나고 싶다고 해서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가시나무에 붙은 불은 하나님의 불입니다. 이 하나님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불이 붙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불붙은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전도의 불이 붙은 것은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붙은 거이 아니고, 한국 교회가 불이 붙은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불이 붙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저 향락의 불, 사치의 불, 음란의 불을 누가 끌 수 있습니까? 그것을 끌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끄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울에게 불이 붙었습니다. 잘못된 불이 붙었을 때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잔해하는 가시였으나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불이 붙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불이 붙은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매를 맞기도 했으며, 온갖 고난과 역경을 수없이 당하였어도 오히려 기뻐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빌립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으나 오히려 찬송하고 기도한 것을 보게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불이 그의 중심에 붙었기 때문입니다. 이 불이 붙어야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 붙은 잘못된 불을 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 걸프 전쟁이 일어났을 때, 페르시아만에서는 멸망의 불이 붙었지만 미국에 하나님의 불이 붙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부시 대통령은 미국 전 교회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백악관에 빌리그래함 목사를 불러 같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불이 미국에 붙자 걸프 전쟁의 불을 끌 수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불이 이 땅의 모든 불을 끄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시나무의 불을 보아야 합니다. 그 불은 세상의 가시에 찔려 고통당하며 신음하는 백성들의 몸부림임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그 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불임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모세와 같이 이 불을 보아야 할 줄 믿습니다.

3. 자신도 불붙자

가시나무의 불이 모세에게 붙었습니다. 그것은 사명의 불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사명의 불이 붙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불이 꺼지면 다른 불이 붙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불꽃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이 불이 붙어 있으면 우리를 찌르는 어떤 가시도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 불살라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 우리에게 말할 수 없이 찔러 대는 가시가 있습니까? 그래서 괴로워하고 고통당하십니까?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불이 붙어 있으면 문제없습니다. 하나님의 불이 이 모든 가시를 제거해 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불이 붙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불이 붙되 가시 속에 붙어야 합니다. 저는 어려서 신앙 생활을 할 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시에 찔려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시가 찌르는 고통을 참고 인내했더니 하나님의 불이 붙어서 오늘도 쓰임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찌르는 가시 속에서 하나님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가시가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믿음으로 이기면 축복이 쏟아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불이 붙으면 나이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상황도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불붙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불이 붙은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가서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 : 9 이하를 보면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가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불이 붙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불이 붙어야 하겠습니다. 그 불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에 애쓰며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이 하는 것을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자신을 찌르는 모든 가시도 타버릴 것이고 세상에 붙은 불도 모두 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