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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브리서
11 : 24-26
인간은 이 땅에 오면서부터 탈출합니다.
모태에서 열 달을 지내면 탈출하게 됩니다. 출생을 첫 탈출로
해서 계속해서 탈출을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의
춤 속에서 부모에게 의존해서 자라납니다. 전적인 부모의
도움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나이가 들면서 부모보다는 어렸을
때는 또래들을 가까이하게 되고 친구들을 더 좋아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청년기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 부모로부터 완전한 탈출하게 됩니다. 이것은 좋은
의미에서 탈출입니다. 다시 말하면 발전을 했다는 것이요
성장을 했다는 것이며 진출했다는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계속해서 탈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탈출이 아니라 탈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탈출과 탈선은 다릅니다. 기차는 정해진 레일
위를 달려야 합니다. 여기서 벗어나게 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을 탈선이라고 합니다. 사실 탈선하게 되면 큰 문제가
됩니다. 사상자도 생기고 기차 차체도 망가지게 됩니다.
또한 어머니의 태에서 열 달을 채우지 않고 나오는 것이
탈선입니다. 중학교를 다니는 여학생은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하고 가정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싫고 공부하기 싫다고 해서 가정을 뛰쳐
나가는 것은 탈선입니다. 요즈음 탈선을 해서 잘못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탈선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은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출애굽'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출애굽이라는 말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탈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이라는
말 대신에 탈출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육에서 육으로 탈출
이 땅에는 탈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에게서 탈출하고, 인간에게서 탈출하며, 세상에서 탈출합니다.
자신에게서 탈출한다는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전에는 그래도 착하게 살았었는데 어떤 계기를 통해서
방탕한 생활로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동안 정직하게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불편함이나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고 선하게 살아왔습니다. 부정이나 불의를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불의한 이득을 취한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과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면서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후회스럽고 잘못 살아왔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혼자서 정직하게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혼자 정직하게 살고, 의롭게 살며, 법을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해서
물결 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세상의 흐름을 따라 살아갑니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자신에게서
탈출한 것이요 육에서 육으로 탈출한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이 성격이 맞지 않는다든지 취미가
다르다든지 하는 이유로 이혼을 합니다. 그래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지만 역시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또 고민을 하고 이혼을 합니다. 오늘
젊은 신혼 부부 중에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부터의 탈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역시
세상입니다. 세상에 한 번 빠지게 되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불의한 단체에 한 번 가입하면 빠져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과가 있는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 먹고 바르게
살아보려고 하다가 다시 악의 세력에 빠지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탈출을 합니다만 육으로
탈출합니다.
탈출 가운데는 개인 탈출이 있고 집단
탈출이 있습니다. 집단 탈출이란 직장이나 정당, 혹은 어떤
단체에서 한 무리가 탈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개인
탈출은 자신의 환경에서 개인적으로 자신만 탈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난하면 탈출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가난때문에
탈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에 부유하고 좋은 환경에
있으면 탈출하고 싶어도 탈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농촌 문제가 심각합니다. 농사를 짓고 살자니 수지
타산이 맞지 않고 그동안 살아온 고향을 두고 떠나자니
가지고 있는 재산이 문제가 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해서 도시로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도 떠나고 싶지만 있는 재산을 처분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아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계속해서 탈출하고 있습니다.
2. 육에서 영으로 탈출
탈출을 하되 조기 탈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마약이나 환각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탈출을
하려고 하는 것인데, 결국 자살까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으로 탈출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에 다니는 것이 영입니까?
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속하는 것이요, 중생한
것이요, 구원에 들어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영으로의 탈출입니다.
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갈등이 계속되면
육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여기서 육으로 탈출한다는 것은,
예수를 믿어도 바로 믿지 못하여 교회 안에 있으나 갈등이
생기게 되고 이 갈등이 깊어져 세상으로 다시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사도
바울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 : 3에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했고, 에베소서
4 : 22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따르고,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옛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으로
탈출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육에서
영으로 올바로 탈출한 자입니다. 히브리서 11 : 8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2 : 1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을 때에, 4절에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 갈등은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육으로
탈출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이스마엘입니다(창 16장).
사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5 : 2에 "아브라함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고 했을때, 4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명의 자식도 주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었더라면 계속해서 영으로 탈출했을 텐데
믿지 못함으로 그만 육으로 탈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결국 영으로 탈출했습니다.
3. 영에서 영으로 탈출
영에서 영으로 탈출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자로서 신앙적 갈등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그 신앙적 갈등의 상태에서
영으로 탈출해야 하는데 영으로 탈출하기는 했으나 잘못된
영으로 탈출한 것을 말합니다. 오늘 교회에 있다가 이단으로
빠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것이 영에서 영으로,
곧 잘못된 영으로 탈출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과 환상을 보았다거나 꿈을 꾸었다고 하는 사람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그런 현상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만 보므로
잘못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탈선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에서 영으로
바르게 탈출해야 하겠습니다. 영에서 영으로 탈출하지 못하면
잘못된 영으로 탈출하거나 다시 세상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요나는 영에서 육으로 탈출한 사람입니다(욘
1장).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서 1 :
2에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3절에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주의 말씀을 선포해야
했는데 제멋대로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이것이 영에서
세상으로 탈출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에서 영으로 탈출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육에서 육으로, 영에서 육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구원해 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영에서
잘못된 영으로 탈출한 사람은 구원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단에 빠진 사람을 전도하기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믿다가 낙심했거나 세상으로 돌아갔다면 차라리
돌이키기가 쉽지만 이단에 빠진 사람은 돌이키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4. 영에서 영으로 탈출 곧 천국으로
탈출
이것은 영에서 영으로 올바로 탈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중에 갈등이 생긴다고
해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이 갈등을 믿음
안에서 잘 소화해 냄으로 은혜를 체험하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전 같으면 갈등이 생길 때 불평도
하고 원망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돌아가서
방황도 했을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위안을 얻으려고
했을 것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해결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깨달으려고 기도하며 말씀을 사모합니다.
이것이 곧 올바른 영에서 영으로의 탈출입니다. 영에서
영으로 바르게 탈출한 사람은 천국 백성이 됩니다. 곧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천국은 곧 하나님입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4 : 17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까이
와 계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이면 그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또한 천국은 성령입니다.
로마서 14 : 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봅시다. 모세는 애굽의
왕실이라는 좋은 환경으로부터 탈출했습니다. 환경이 좋지
않으면 탈출하기가 쉽지만 환경이 좋으면 탈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모세의 환경은 좋은 정도가 아닙니다.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는 아주 훌륭한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 좋은 부귀영화를 버리고 좋은 환경을 버리고 미디안
광야로 탈출했습니다. 모세는 애굽보다 미디안을 더 좋아한
것입니다. 우리도 애굽보다는 미디안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가나안이 애굽보다 나쁘지만 그러면서도 더
좋아하고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 탈출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여전히 애굽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애굽에 머물러 있으면 노예 살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유와 해방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탈출해야
합니다. 고난과 역경이 앞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떠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습니까?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 : 10에 "이는 하나님을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애굽을 탈출할 수 있었겠습니까? 애굽보다 가나안이 애굽보다
미디안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 : 24 이하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니므이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탈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를 개인적으로 탈출시킨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능력을 준 것은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고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먼저 출애굽해야
합니다. 출애굽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출애굽했으면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해 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탈출시킨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세와 같이 세상에서 탈출해야
하겠습니다. 죄악에서 탈출해야 하겠습니다. 탈출해서 하나님을
향해, 가나안을 향해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탈출하기가
어렵지 일단 탈출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역사하십니다.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로마서 8 : 18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 계십니까? 만약 그
자리가 애굽이라면, 죄악의 자리요 세상이라면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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