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태복음
24:42-46
왜 양식을 먹어야 합니까? 배부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양분이 되는 양식을 섭취함으로
힘을 얻기 위함입니다. 겨울에는 밥을 먹지 않으면 더 춥습니다.
양식을 먹어야 추위도 이깁니다. 여름에는 양식을 먹어야
더위를 이깁니다. 먹지 않으면 오히려 허기지고 피곤합니다.
과거에는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먹습니다. 밥은 별로
먹지 않습니다. 채소를 주로 먹고, 먹어도 골라서 먹습니다.
양분이 되되 살찌지 않는 양식을 먹습니다. 그만큼 살만해졌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서
이리 저리 헤메고 있습니다. 돈을 양식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식을 양식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양식 삼습니다. 무엇이 참된 양식이 될까요? 우리는
참 양식을 얻고, 그 양식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흉년 든 세상
성경의 역사를 보면 흉년이 들었던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때에 기근이 들어 흉년이 들었습니다.(창12:10).
이삭의 때에도 흉년이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창26:1).
요셉의 때에도 흉년이 들었습니다(창41:54). 이 때에 가나안
땅에도 흉년이 들어 야곱의 형제들이 양식을 얻기 위하여
애굽에 갔다가 동생 야곱을 만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합 왕 때에도 흉년이 들었습니다(왕상18장). 흉년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도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기근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도 흉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부 지방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곡식이 많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예
곡식을 심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얼마간 불볕 더위가 계속되고
가물면 흉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연적인 흉년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먹고 살게 되었다고 해서 흉년을 면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자식 흉년이 들었습니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 놓고 외롭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편 흉년이
들었습니다.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는 아내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내 흉년을 만났습니다. 아내에게 가정과 자식을
맡겼더니 아내가 바람을 피웁니다. 이제는 아내 때문에
속썩는 남편들이 많습니다. 양식 흉년보다도 사람 흉년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마음이 흉년이 들었습니다.
좋은 것을 아무리 먹고 가져도 양식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
흉년은 양식이 없음이 아니라 마음의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흉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흉년입니다.
영적인 흉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입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갈함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암8:11-13)."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해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아서 그렇습니까?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세미나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흉년을 만난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 선포되어도 그 말씀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시107:4)."
양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더 피곤한
세상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흉년이 들었습니다.
2. 양식을 구하자
구 소련인 러시아나 북한은 양식 문제로
심각합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습니다. 결국 소련은
개방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게 되자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북한도 양식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핵문제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나 이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하는 것을 보면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양식이 필요합니다.
흉년 만난 우리도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가정은 가정대로 양식을 구해야 하고, 직장은 직장대로
양식을 구해야 하며, 학교는 학교대로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양식될 만한 것이
있습니까? 물론 나라마다, 지역마다, 개인적으로 양식이
되는 것이 있고 양식이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것이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양식될 만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공허합니다. 굶주려 있고, 허기져 있습니다.
또한 병들어 있고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이 허기진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학문을 양식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이 마음의 양식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오락을 마음의 양식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오락도 마음의
양식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양식이 되라고 교훈을 합니다. 그러나
그 부모의 교훈 역시 자식에게 마음의 양식이 되지 못합니다.
마음과 생각, 정신적인 흉년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마음의 양식을 얻기 위해서 주말이면 휴가를 떠납니다.
주말이면 항상 분주하고 복잡합니다. 모두가 양식을 얻기
위해 떠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때에 기근이 심하게 들어 흉년을
만났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야곱의 식구들이
허기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자기 자식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죽지 아니하리라(창42:2)."
양식을 구해야 우리가 삽니다. 육의 양식만 아니라 정신적인
양식, 영적인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이 나라에게 양식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양식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식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양식을 주는 자가 되자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양식을 나눠주는
민족입니다. 우리가 6.25때에 그들을 통해서 양식을 많이
얻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국도 양식을 주면서 허기져
죽을 지경입니다. 미국이 부요해서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
아닙니다. 풍부하기 때문에 양식을 주체할 수 없으니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게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사람이 있지만 나눠주는 것입니다. 양식을 주는 그 나라도
허기졌고 그 양식을 받아 먹는 우리도 허기졌습니다. 요즈음
북한이 왜 유엔과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과 회담을 합니까?
실제로는 우리와 대화를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양식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하고 이야기 해봐야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흉년들었을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양식을 받아 먹었습니다.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왕상17:5)."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받아 먹었습니다. 그런 그가 먹을 것이 없는
사르밧 과부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엘리야가 흉년 속에 있는 그 과부에게 축복하여
기름이 넘치게 한 것입니다. 흉년 속에 살아가서 풍년의
축복을 받아 누립니다. 말세 교회는 양식을 주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양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썩는
양식과 영생하게 하는 양식입니다(요6:27). 교회에 와서는
영생하는 양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살 때에 세상 양식을 먹었습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불평합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죽게 내버려 두지
광야로 인도하여 굶어죽게 하느냐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신령한 양식과 음료로 먹이십니다(고전10:5).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사람도 양식이
없어서 죽게 한 일이 없습니다. 다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여러분! 먹고 마시는 것만 주면 양식이
됩니까? 되지 않습니다. 육의 양식만 가지고는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것이 양식이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는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에 진정한 양식이 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요6:48)."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곧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양식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불리고, 돌아가서는 이 양식을
나눠주어야 합니다. 참된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나눠주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환난의 때에 엘리야는 로뎀 나무 밑에서
죽기를 간구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먹을 것을 줍니다. 그리고 사십 주야를 달려가게 합니다(왕상19장).
환난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지금은 환난의 때입니다(마24:6,21). 이 때에 우리는 예비하고
있어야 합니다(44). 양식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받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양식을
얻어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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