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흥시켜주소서

본문 |합1:1-4

 

선지자 하박국의 묵시로 받은 경고라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하박국 1:1-4

하박국 선지자는 주전 650년경 유다 땅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 당시 유다의 부패와 타락상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처에 강포와 간악함과 겁탈과 분쟁이 횡행하며 의로운 사람은 무참히 짓밟히는 패역한 시대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와 마찬가지로 공의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마치 폭도와 같이 다 강포해졌습니다.

이러한 시대 가운데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 외치기를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합 3:2). 부흥되어야 그 민족과 백성이 회복되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과 교회에도 호세아 시대와 같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1. 가정을 부흥시켜 주옵소서

오늘날 많은 가정은 병들었습니다.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부부간이나 부모자식간에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부부간에는 이혼하는 가정들이 많아졌습니다. 가정에서 무엇인가 잘 맞지 않아서 불협화음의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위기가 몰아닥치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관공서에서는 임금을 동결하고 직원을 감축하는 등 어려움을 맞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가 가정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사람의 죄악이 관영하고 그 마음의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 세상을 홍수로 멸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만들기로 하였고 온 가족이 이 일에 마음을 모았습니다. 아들 하나라도 반대하면 심란할 텐데 다 하나가 되어 방주를 짓습니다. 노아의 가정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20절을 보면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서 노아의 가정은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노아의 가정과 같이 영적인 부흥이 먼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 영적인 부흥이 우선적으로 일어나야 다른 부흥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영적인 신앙 부흥없이 생활의 부흥, 경제적인 부흥, 가정의 부흥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불황을 맞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경제 위기입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을 하는 성도들은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정적으로도 어려움이 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기려면 신앙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야 모든 것을 절약할 줄 알고 허리띠를 졸라매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모아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2장을 보면 야곱의 가정이 회의를 합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어서 양식이 없을 때 야곱이 그 아들들에게 “너희가 서로 관망만 하지 말고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고 합니다(창 42:1-2). 야곱의 가족은 모두 66명입니다. 양식이 떨어져 기근이 심할 때 야곱은 가정의 부흥을 재촉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흉년 들었는데 다 굶어 죽을 지경에 빠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제 수준에 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을 형편의 가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적인 양식이 없습니다. 가정이 부흥되려면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루는 사마리아성에 저녁을 구하러 갔습니다. 제자들이 돌아와서 “저녁을 잡수소서”라고 말하니 주님께서는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4:32).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라고 기이히 생각했습니다(요 4:33). 그러나 주님은 우물가에서 여인과 대화하고 그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니 먹지 않아도 배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요 4:34). 참으로 영적인 양식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의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을 보십시오. 그 가정은 경건한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으로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고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 가정의 기도와 구제함이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서 고넬료 가정은 베드로 사도를 모셔놓고 영적인 부흥회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일가친척이 구원받게 되는 영적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매달리시고 영적인 부흥이 가정마다 일어나서 믿지 않는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2. 교회를 부흥시켜 주옵소서

교회 부흥은 단순한 어느 개교회의 부흥이 아닙니다. 교회의 부흥은 민족의 부흥입니다. 영국이 과거 18세기 교회가 침체되고 도덕적으로 타락할 때 요한 웨슬리라는 한 사람이 일어나서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영국 전체에 영적인 대각성운동이 일어나 전국민을 회개시켰고 이어서 이 영적 부흥운동이 전세계로 파급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부흥은 민족의 부흥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생명력을 잃으면 민족도 생명력을 잃고 교회가 쓰러지면 민족도 쓰러집니다. 교회가 부흥하면 민족이 부흥됩니다. 일제시대에 그 어려운 고난과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우리 민족을 주도한 것은 교회였습니다. 또한 해방될 때까지 끝까지 불굴의 믿음을 사수한 것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민족의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목회자 한 사람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부터 약 40여년전 충남 반조원 교회에서 목회할 때 제가 능력받고 부흥회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우리 교회 학생은 아니었는데 강경의 여학생 2명이 열심히 기도하며 은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강경에서 오려면 강을 넘고 산을 넘어서 20리 길을 걸어서 와야 하는데 뜨거운 마음을 품고 은혜받고자 왔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대단한 반대에 부닥쳤는데도 은혜받더니 공부하는 태도나 어른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 씀씀이 등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서 그의 부모님과 그 교회성도들이 집회에 참석해서 은혜받고 교회가 뒤집혀졌습니다. 여학생 2명이 교회를 부흥시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부흥시킵시다. 여러분이 속한 구역을 부흥시키고 교사라면 교회 학교를 부흥시키고 성가대원들은 성가대를 부흥시키고 전도 회원들은 각 전도회를 부흥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놀랍게 부흥될 줄 믿습니다.

3. 자신을 부흥시켜 주옵소서

가정이나 교회가 부흥되려면 나 자신이 부흥되어야 합니다. 제가 처음 목회할 때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뼈아픈 경험을 많이 하였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교회가 부흥되지 않고 잘 나오던 사람도 나오지 않고, 교회에서 봉사를 잘 하던 사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는 시험드는 일만 생겼습니다. 교회가 가라앉고 주저앉길래 내가 먼저 부흥되어야 하겠구나 깨닫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고 은혜받고 능력받고 내가 부흥되니까 교회가 부흥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가정에서도 아버지가 어떻다, 어머니가 어떻다 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부흥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식이 어떻다 하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부흥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가 부흥되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이 부흥되어야 합니다. 어떤 부흥이든지 나로부터 참 부흥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4. 참 부흥을 일으키자

참 부흥은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모하는 것입니다(시 107:9).

참 부흥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참 부흥은 잠자던 자가 깨어나는 것입니다. 참 부흥은 누워 있는 자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난 자가 걸어가는 것입니다. 걸어가는 자가 뛰어가는 것이 부흥입니다. 여러분! 앉아 있는 신앙입니까?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일어섰습니까?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걸어가고 있습니까? 뛰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에 영적으로 참 부흥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항상 교회에 십 년, 십오 년 나와도 주일날 하루 나오고 성도의 의무를 다했다고 하는 자에게 무슨 부흥이 일어나겠습니까? 일주일에 주일 한 번만 예배에 참석하는 자들은 이제부터 저녁 예배까지 두 번 나오시기 바랍니다. 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두 번 나오시던 분들은 수요예배까지 세 번 나오시기 바랍니다. 세 번 나오시던 분들은 네 번 다섯 번 나오시기 바랍니다. 목요 산상기도회, 금요 철야기도회 나오셔서 기도하시고 참 부흥을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이런 영적인 부흥을 여러분 자신이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이런 영적인 부흥은 누가 갖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일으켜야 합니다. 나 자신이 영적인 부흥을 사모하고 갈급함으로 참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