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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린도전서
9:16
오늘은 한 세기를 마감하고 1999년을
마감하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일년 동안 부득불 했습니다.
또 부득불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피차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살아갈 때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
취미에 맞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합니다. 사람은 때때로 권태기가 찾아옵니다. 부부
사이에도, 직장인들도, 학생들도 하기 싫은 일이라도 때로는
부득불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나가기 싫어도 기도하기 싫어도 감사하기 싫어도 부득불
해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진 것처럼
말입니다.
1.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하여 부득불
포기하였습니다
사울은 회개하기 전 가말리엘 최고 학부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를 안 뒤 그는 많은
것을 부득불 포기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7절과 8절 말씀을
보니까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다 포기했습니다. 우리는 먹고 마실 권리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4절 말씀에도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술을 마실 수도 있지만 그러나
주를 위해서 포기합니다. 우리는 결혼 할 권리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5절 말씀에도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주를 위하여
결혼을 안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부득불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또 주님을 위해서 헐벗고
주리고 고생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27절 말씀을 보면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부득불 포기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하여 염려
아닌 염려를 하였습니다
어느 여자 성도가 좋은 집에 순종 잘하는
자녀에 가족 모두 건강하고 별 근심 걱정 없는 가정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만 갔다 오면 눈이 퉁퉁 부어서
오곤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남편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부인은 그 남편을 염려하며 날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주를 위하여 헐벗고 추위에 떨고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 천치가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 주님을 위해서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28절 말씀을 보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 이게 염려
아닌 염려를 하는 것입니다. 금년에도 구역장, 지역장,
교사 등을 하게 되었을 때 내 마음에 맞지 않아도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부득불 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부득불은 억지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자식을 항상 물가에
내놓은 심정 말입니다.
3.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부득불 해야
합니다
복음은 죄인이 의인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죄인인데 복음으로 인하여 의인이 되었습니다.
복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마귀에게 속한 내가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멸망 받을 내가 영생을 얻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훌륭한 사람이요, 아주 자유로운 사람이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주를 위하여 낮은
자가 되었습니다. 종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19절
말씀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앞에서나 율법 아래 있는
자 앞에서 그들을 얻고자 종이 되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9장20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사도 바울은 율법 없는 자에게도 얻고자 종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21절 말씀은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고 바울의 태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약한 자들 앞에서도 약한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복음을 위하여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2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그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 그의 뜻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9: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표어가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다음 주일에 앞에 걸어 놓은 표어가 떨어지고 새 천년에
새 표어가 붙는다 할지라도 전도하는 일은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2000년에도 전도는 부득불 해야 합니다.
억지라도 전도해야 합니다. 십일조 생활도, 기도 생활도
억지라도 부득불 해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 같이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일을 합시다. 이제 내가 주를 위한 일이라면 억지로라도
부득불이라도 행하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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