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는 나그네다

본문 |벧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베드로전서 1:1-2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민족이지만 유랑민족입니다. 그들은 목축업을 하는 유목민이기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항상 떠돌아다니면서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1948년도에 독립을 했지만 아직도 전 세계에 나그네 삶을 사는 유대인들이 많습니다.

우리 민족도 강대국 속에 끼여 살다보니 주권을 빼앗긴 때가 있었습니다. 반만년의 역사 속에 수 없는 침입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나라가 있고, 사회가 있고, 가정이 있다 하더라도 나그네로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천년 만년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합니다.

이번 주에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추석을 맞이합니다. 명절이면 늘 마음 아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실향민들입니다. 특히 6·25 전쟁으로 말미암은 이산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본래 고향이 싫어서 떠난 자들이 아닙니다. 원치 않은 환경에 의해서 나그네가 된 것입니다.

1. 흩어진 나그네

명절은 흩어진 나그네들이 함께 모입니다. 꼭 부모형제만이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만나고 난 후에는 각자의 길로 다시 흩어지게 됩니다.

인간은 나그네입니다. 집이 없어 구름에 달 가듯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만 나그네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그네입니다. 이 나그네의 삶속에서 사도 바울은 진정한 본향인 천국을 사모하고 있습니다(고후 5:8). 이 세상은 잠시 거쳐 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게 미련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야곱은 애굽의 바로 앞에서 험악한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창 47:9). 야곱의 생애는 참으로 험악했습니다. 출생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고, 어려서 부모의 슬하를 떠나야 했고, 젊어서 종살이를 해야 했으며, 외삼촌의 배신과 원수를 갚으려는 형의 도전을 받는 등 말할 수 없이 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환도뼈가 위골되었고,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야 했으며, 심한 가뭄으로 기근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의 백삼십 년의 인생 여정이 순탄하지 않았으며, 또한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또한 나그네의 세상은 탄식하는 세상입니다(고후 5:2).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면 모두 행복한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 탄식하며 살아갑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과부가 자기 억울한 사정을 떼를 쓰면서 재판장에게 들어달라고 하는 비유가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 딸에게 흉악한 귀신이 들어서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탄식을 합니다. 이렇듯 오늘 사람들도 여러 가지 문제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사 40:27).

그리고 나그네의 세상은 시험 많은 세상입니다.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라고 베드로전서 1장6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세상은 유혹도 많고 시험도 많습니다. 시험을 하나 이기면 또 다른 시험이 찾아옵니다. 작은 시험을 이기면 큰 시험이 찾아옵니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입니다.

2. 나그네 생활 중에 소망을 갖자

나그네 생활 중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소망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친구들은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험악한 세상, 탄식하는 세상, 시험많은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 세상이 우리의 소망이라면 세상을 따라야 하겠지만 우리의 소망이 아니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함으로써 소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히 11:1). 그러면서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했습니다.

그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역시 우리와 같이 험악한 세상에서, 탄식하는 세상에서, 시험 많은 세상에서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히 11:4). 에녹은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 갔습니다(히 11:5).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했습니다(히 11:7).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습니다(히 11:8).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히 11:13).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히 11:15-16). 우리도 하늘의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왜 하늘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까? 하늘의 기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벧전 1:4). 세상의 것은 언젠가 썩습니다. 쇠하게 됩니다. 소멸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늘의 것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들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죽은 소망이 아니라 산 소망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소망은 살아 있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교훈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오직 소망을 하늘에 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교훈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이 세상은 살아가기에 피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 하늘의 소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이 찬송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나그네 생활을 바로 하자

나그네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두려움으로 지내야 합니다. 성경은 나그네인 우리들에게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권면합니다(벧전 1:17).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쓰러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험악하고 시험 많은 세상이요 탄식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본향을 찾아가는 우리는 두려움으로 지내야 합니다.

또한 나그네 생활은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그리고 근신해야 합니다. 바울은 베드로전서 1장13절에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면서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엡 6:14). 나그네 생활은 허리를 동이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근신해야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나그네 생활을 바로 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근신하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벧전 5:8). 나그네 생활 속에 마귀가 틈을 타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벧전 1:5). 믿음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습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나그네 생활을 바로 하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으로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도 교회에 나오기까지 많이 싸웠습니다. 이번 주에는 명절이 들어 있기 때문에 싸움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영혼을 거스리는 육체의 정욕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벧전 2:11). 영적인 싸움은 기도입니다. 근신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육체의 정욕에 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영광스런 즐거움으로 기뻐하게 됩니다(벧전 1:8). 또한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벧전 1:9).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벧전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