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주년을 맞이하여 꿈을 갖고 꿈을 키우자

본문 |창28:10-14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세기 28:10-14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창세기 37:5-11

꿈이라는 것은 소망이요, 환상이요, 비전이요, 바라는 것이요,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설화에는 꿈과 관계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용꿈을 꾸고 옥동자를 낳았다든지 돼지꿈을 꾸고 횡재하였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꿈은 다음처럼 다섯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실몽, 잡몽, 허몽, 사몽, 영몽 등입니다. 실몽이란 실제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말합니다. 잡몽은 말 그대로 잡된 꿈입니다. 허몽은 허망한 꿈입니다. 꿈꿀 때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황홀감을 안겨줍니다만 눈뜨면 꿈인 것입니다. 그래서 허망하기 짝이 없는 꿈을 말합니다. 사몽은 사악한 꿈입니다. 영몽은 영의 꿈입니다.

본문 28장10절 이하를 보면 야곱은 하란으로 도망가다가 들판에서 잠을 잘 때 천사가 하늘에서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놀라면서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영몽을 꾸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가정의 꿈, 우리 자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20주년을 맞이한 우리 교회의 꿈은 무엇입니까? 오늘 이러한 꿈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 가정의 꿈 (우리의 가정)

우리 가정은 가정마다 꿈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고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정의 꿈은 대체로 부모의 꿈입니다. 부모의 꿈이 가정의 꿈과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부모의 꿈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과거 우리들 부모님의 꿈은 돈을 잘 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제시대를 체험한 우리 부모님 세대는 너무 가난하게 살아왔습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던 36년간 일본은 우리 땅에서 매년 2000만 석의 쌀을 착취해갔습니다. 이렇게 빼앗기며 너무 못살다 보니 부모의 꿈은 자식이 공부 잘 해서 잘 사는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서는 돈 많이 주는 직장으로 취직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 우리 부모님들의 꿈은 돈이었습니다.

둘째로 가정의 꿈은 권세 있는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살면서 억울한 일들을 너무 많이 당해 힘없는 자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권세 있는 자리에 올리려고 애씁니다. 판검사가 되도록 공부시킵니다.

이처럼 한국의 많은 가정은 부모의 꿈이 곧 가정의 꿈이요, 부모의 꿈은 한을 풀기 위한 꿈이었습니다.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도 부모의 한을 풀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꿈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육의 꿈과 영의 꿈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꿈을 가장 영화롭게 이룬 자가 있다면 솔로몬일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부귀영화, 권세 있는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육의 꿈을 다 이룬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도서를 통해서 고백한 말은 헛되고 헛되다는 것입니다. 허망한 꿈이었다 했습니다. 그래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전 12:1). 그러므로 우리 가정이 자식을 통해서 부모의 한을 풀었을지라도 이 땅에서의 꿈은 육의 꿈이요 헛되고 헛된 꿈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가정이 꿈을 갖되 육의 꿈이 아니라 영의 꿈을 갖도록 합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한 하박국 선지자처럼 영의 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합 3:17-18).

또한 자녀들에게 육의 꿈을 키워 주기보다는 영의 꿈을 주어야 합니다. 영의 꿈을 키워 영의 꿈이 이뤄지도록 기도합시다. 오늘 우리의 가정이 꿈을 갖되 영의 꿈으로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사업을 해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꿈을 갖고 일해야 합니다. 공부를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꿈을 영으로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2. 나의 꿈 (나 자신)

한 어린아이에게 “너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될래?”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대답을 기다렸으나 실망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꿈은 엿장수였기 때문입니다. 엿이 너무 먹고 싶어 엿장수가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개성이 있는 존재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의 개성을 존중해서 살려 주고 계발시켜 주는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처럼 부모의 꿈을 자녀들에게 억지로 심어 주고 강변하는 것은 좋은 양육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부모가 자신의 꿈을 자녀들에게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닙니다.

어떤 집사님이 자녀문제로 인해 저와 함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집사님의 아들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이 집사님의 꿈은 아들이 부모가 원하는 길로 가기를 바라지만 굳이 가수가 되려고 발버둥을 치니 어쩌면 좋겠냐고 했습니다. 이런 고민은 우리 가정에 한둘 쯤은 다 있습니다. 개성 시대에 살고 있는 자녀들이다 보니 부모세대와는 생각과 정신과 꿈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꿈이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면 그 꿈을 자기 개성에 맞게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실 영상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감각적인 신세대들은 예술계, 스포츠계, 연예계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꿈을 가지고 자기 개성에 맞게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부모의 기대와는 관계 없이 개성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들은 죽을 지경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개성있는 삶도 중요합니다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영적인 꿈을 갖고 그 개성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영적인 꿈을 갖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입니다. 아무리 개성시대를 산다고 해도 영적인 꿈이 없다면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개성에 맞춰 살지 못할지라도 영적인 꿈을 소유했다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 개성을 영적인 꿈으로 돌립시다. 영적인 꿈을 갖도록 인도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교회의 꿈 (우리교회)

우리 교회의 꿈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우리 교회도 새로운 꿈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교회가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즉 교회는 학교가 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해야 할 꿈을 갖는 것입니다. 가정이 할 수 없는 영적인 역할을 교회에서 감당할 꿈을 갖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재가 교회에서 나와야 합니다. 과거 일제시대 이 나라의 지도자가 누구였습니까?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독립선언을 한 33인 중에 기독교인이 절반이 넘습니다. 압제 속에서도 민족을 이끌고 나간 인물은 기독교에서 나왔습니다.

해방 직후의 혼란한 시기에도 이 민족의 지도자는 기독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꿈을 가진 훌륭한 기독교인들이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과거에는 도시며 농촌이며 관계 없이 인재가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기독교에는 인재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에 밀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뒤쳐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저는 20년 전 이 교회를 개척할 당시 교회를 지을 조그만 대지나 건물을 달라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수양관을 허락해 달라는 꿈을 먼저 가졌습니다.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기도 힘든데 이 꿈을 가지고 강원도, 경기도 일대를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습니다. 수양관을 주시옵소서라는 꿈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양수리 수양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제 또다시 꿈을 갖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무슨 꿈을 가져야 합니까?

우리 교회가 학교가 되어야 하고,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학교 시설에 버금가는 시설을 즐길 수 있고,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영적인 교육장이 되도록 만드는 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와서 가정에서의 안정감 이상을 누릴 수 있도록 꿈을 가집시다. 요즘 청소년들이 노래방에 가서 세상노래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우리 교회가 노래방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노래방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이 디스코텍을 찾습니다만 우리 교회가 디스코텍 이상으로 흥겹고 유익한 영적인 교제와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여가를 선용하며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과 체육시설도 우리 교회가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너무 뒤떨어지고 낙후되어서 사람들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 교회는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익한 시설을 만들어서 믿지 않는 자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꿈을 가지고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꿈을 이루는 데 투자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를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성도님들의 가정을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2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가 꿈을 갖고 그 꿈을 실현해 갑시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여러분 가정의 꿈도 이루어지고 자녀들의 꿈도 이루어지고 자자손손 성취되는 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 꿈도 허몽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꿈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