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녀의축복을 받은 가정

본문 |시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 127:3-5

동양에는 오복(五福)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명’, ‘부귀’, ‘건강’, ‘덕’,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녀 복이 없습니다. 제가 볼 때 자녀 복은 ‘덕’ 속에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이 ‘덕’ 안에 ‘자녀 덕’, ‘처 덕’, ‘남편 덕’ 이러한 것들이 들어가리라 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이 오복도 다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성경의 팔복이 주어졌습니다. 팔복의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유해야 복인데 성경은 “가난한 자가 복 있다”라고 말합니다. 가난은 무엇입니까? 기갈하고, 갖고 싶고, 먹고 싶고, 얻고 싶은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녀의 복에 기갈해 있습니다. 그만큼 자녀를 위해서는 과잉 지출을 합니다. 자녀에게 투자하는 돈이 국가의 예산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고 나왔습니다. 또 다른 기사에 어느 회사의 중역이 있는데, 그 사람은 월급이 400만원이 넘습니다. 그가 그의 자녀들을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 캐나다로 먼저 보내놓고, 월급 받은 것은 얼마 남기지 않고 다 자녀들에게 보낸답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좋은 집을 전세로 주고, 경기도 단칸방에서 라면이나 끓여 먹으며 산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자녀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자녀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까?

1.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다.

제가 작년에 권사님 한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분의 남편 되시는 분은 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을 만나면 항상 남편 눈이 나아졌는지 물어봅니다. 그런데 하루는 손자가 태어났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그분의 아들이 ‘삼대 독자’라는  것입니다. 손자가 독자가 되면 ‘사대 독자’가 됩니다. 그분이 걱정을 하며 제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시편 127장3절의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하는 말씀을 기억하여 그 손자의 이름을 ‘기업’이라 지어 주었습니다.

‘기업’은 재산이요, 사업입니다. 자식은 재산이고, 사업입니다. 제가 농촌에서 목회할 때 사람들이 “목사님, 이 농사도 잘 해야 하지만 자식농사 잘 해야 합니다” 말하곤 했습니다. 맞습니다. 자식은 기업이요, 사업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업이 돈이요, 명예요, 권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필리핀의 사정을 보십시오. 그들이 부정하고 착취하여 폭동이 일어나고 계엄령까지 선포되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기업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코멜리아라는 귀부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장군이며 존경받는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미망인이 되어 자식 삼남매를 정직하게 키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여인을 존경하였습니다. 하루는 유명한 정치가가 세상을 떠난 기일에 많은 장관 부인들이 그 집에 와서  담소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야기 중에 누구의 보석이 가장 비싼 것인가, 서로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마지막에 코멜리아라는 귀부인에게도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밖에 나가서 자신의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데리고 들어와 이들이 자신의 가정의 보화라 말했습니다. 자신의 손에 있는 보석만을 자랑하던 사람들이 부끄러워 모두 소리도 없이 도망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참 보화, 참 재산, 참 사업, 참 기업이 자녀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다 

시편 127장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결혼했다고 다 자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12장1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의 가정이 나오는데, 그의 아내 사래가 나이 많았지만 자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그의 몸종 하갈을 통해 자식을 얻습니다. 사래가 자식이 없는 것이 서러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바꾸어 ‘사라’로 부르셨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90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살입니다.

창세기 17장15-19절에는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도 자식이 없어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니 사무엘을 얻게 되고 그를 하나님께 바치니 그가 사사요, 선지자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자녀는 상급 중의 상급입니다. 자녀는 노벨상보다 큽니다. 자녀는 잘만 키워놓으면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3.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힘이다 

재산이 많아도 자식이 없으면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지 못하고 가난해도 자식이 주위에 있으면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도 자식은 힘입니다. 시편 127장4절에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라고 말했습니다. 화살은 옛날에 전쟁터에서 쓰던 무기입니다. 그때에는 화살이 굉장히 중요한 무기입니다. 그러니 젊은 자의 자식은 무기와 같은 것입니다. 자녀도 잘 키워야 힘이 되고 무기가 되지 잘못 키우면 자기 아버지를 화살로 쏘고 어머니를 화살로 쏘게 됩니다. 잠언 10장1절에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라고 기록 했습니다. 자식 때문에 근심하고 자식이 걱정거리를 안겨주게 됩니다. 우리는 자식을 힘이요, 방패로 키워야 합니다.

4. 자녀는 신앙의 교육으로 양육해야 된다

자녀를 키울 때 신앙으로 키워야 상급이 됩니다. 자녀를 캐나다로 보낸다고 해서 그가 상급이 되지 않습니다. 요즘 뉴스에 보면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를 폭행한 사건들이 나옵니다. 물론 자녀가 잘못했을 때는 견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몽둥이로, 손으로, 발로 폭행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을 때려야 할 때는 이 말씀을 기억 하십시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그리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히 12:5-6)라는 말씀처럼 믿음으로 교육시켜 놓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그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바로 잡아놓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를 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는 교회 와서 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자녀를 기업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들이 힘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자라게 하기 위해 말씀으로, 신앙으로 키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녀를 가르치고 바로 세우는 우리 성도들의 가정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