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사는 영혼의부모가 되자

본문 |고전4:14-16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린도전서 4:14-16

오늘은 교사 헌신예배로 하나님께 드리는 참으로 귀한 시간입니다. 이 헌신예배를 통하여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의 영적인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많은 교사들이 있었지만 바울은 교사가 되기보다는 먼저 영적인 부모가 되기를 원했음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서 너는 내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의 모든 교사들이 영혼의 부모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영혼의 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

1. 영적으로 낳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어떤 한 사람을 전도했다고 해서 그 영혼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도한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잘 성장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이를 뱃속에 잉태한 것처럼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19절에서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바울은 복음으로써 한 영혼을 낳기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노라고 자신있게 외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교회의 교사들도 내가 맡은 그 영혼을 위해서 어떠한 수고와 노력도 아끼지 아니하고, 심지어 바울처럼 해산의 고통까지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영적인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2. 영적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 교사들은 맡겨진 영혼들을 잘 양육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하나님의 책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양육은 무엇입니까? 양육이란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잘 먹이지 못하고 입히지 못하면 그 아이는 정상적으로 성장하지를 못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17절을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라고 우리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호되게 책망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겉으로는 부유하고 건강한 것처럼 보였지만 영적으로는 아주 빈곤하고 궁핍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유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집에서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과 좋은 옷을 입으며 지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영적으로 풍성한 것은 아닙니다. 집이 부유하기 때문에 오히려 영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상태에 놓여 있을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이 영적으로 가난한 상태에 놓이지 않도록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잘 양육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에베소서 6장4절에서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3. 영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이 참 좋아졌습니다. 너무 좋아지다 보니까 어린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영어학원이나 미술학원, 그리고 피아노학원 등으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 비해서 경제적으로는 살기가 좋아졌지만, 정서적인 면에서는 요즈음 아이들은 참으로 불행한 시대에서 삽니다. 거기에다가 성적 위주의 교육풍토가 너무 팽배하여서 학교에서도 무조건 좋은 성적만을 얻을 수 있는 비결에만 치중하다 보니까 우리 학생들의 마음은 자꾸만 이기적이고 개인주의로 빠져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옆에 있는 친구를 내가 이겨야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 아닙니까? 도대체 무엇으로 저들을 교육시킬 수가 있습니까?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 저들의 비뚤어진 마음과 사고방식을 뜯어서 고칠 수가 있을까요?

헬라 시대에 아주 유명한 교육가가 있었습니다. 한 부부가 두 살 난 아이를 데리고 그 교육가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이 아이가 두 살이 되었는데 언제부터 교육을 시키면 이 아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유명한 교육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미 2년이나 늦었습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교육을 시켜야만 합니다.” 즉 아이의 교육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교육을 시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의 교사들도 이러한 교육을 영적으로 실천해야만 합니다. 내가 맡고 있는 학생을 나의 마음속에 품고 영적으로 그 영혼을 잉태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산모가 10개월 동안 뱃속의 태아를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듯이, 교사도 영적으로 품은 학생들을 위해서 그만한 수고와 노력을 아낌없이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생들을 절대로 영적인 사람으로 교육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4. 항상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항상 관심이 있습니다. 나의 아들과 딸이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어떠한 옷을 입고 다니는지, 얼굴색은 어떤지 항상 관심을 갖고서 지켜봅니다. 조금만 행동이 이상해도 금방 눈치를 챕니다. 우리 교사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학생들의 행동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이 학생이 은혜를 받는지 안 받는지, 옆의 친구랑 장난치며 떠드는지 안 떠드는지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반의 학생이 교회를 오는지 안 오는지 알지도 못하고 예배시간에 교사가 늦게 와서 뒷자리에 앉아 같이 늦게 온 교사와 잡담이나 한다면 무슨 교사요 선생님이요 스승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교사님들 중에서는 이와 같은 선생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교회에 빠진 친구가 있다면 집에까지라도 찾아가서 심방할 수 있는 관심이 우리 교사들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맡겨진 그 영혼을 위해서 날마다 눈물 뿌려 가면서 기도할 수 있는 교사님들이 다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교사의 사랑과 관심만이 학생들의 마음을 바로 잡아주고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바라고 믿기로는 오늘 하나님께 귀한 헌신예배를 드리는 우리 교회의 모든 교사 선생님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들을 위해서 영적으로 잉태하시고 양육하시고 교육하는 가운데에 늘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서 저들로 하여금 이 시대의 주인공으로 믿음 안에서 잘 성장시키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